말 없는 다수와 말 많은 소수의 차이

2014.06.19 15:11:00

최창중

청주 성화초 교장·소설가

러일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1913년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던 미국 작가 잭 런던이 지은 '조선 사람 엿보기'라는 책을 보면 미국 사람의 눈에 비친 조선 말기 한국인의 모습이 뛰어난 유머 감각으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전쟁은 인간사의 마지막 심판자이며 또한 국민성을 최후로 시험하는 관문이다. 한국인들은 이 시험에서 실패했다. 외국 군대가 자기 나라를 통과하려고 하자 한국인들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도망갔다. 그들은 주워갈 수 있는 것 모두를 등에 지고는 들키지 않을 은신처인 산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구경을 위해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약간의 위험만 느끼면 언제든지 서둘러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한국인의 대표적인 특성으로 꼽을 수 있는 습성이 바로 호기심이다. 한국말로는 구경이라고 한다'

잭 런던이 지적한 위와 같은 한국인의 특성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말없는 다수가 되어 방관자적 자세를 취한 채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저 구경만 할 뿐입니다.

그런 이유로 목소리 큰 소수가 활개 치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도록 이끈 것은 분명 목소리 큰 소수가 아니라 말없는 다수입니다.

필자는 가끔 이슈가 되었던 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글로 쓰곤 합니다. 그때마다 겪는 내적 갈등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옮기려 하면 내용이 너무 강해 돌팔매를 맞을까봐 뒤가 켕기고, 그렇다고 밋밋하게 쓰자니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직성이 풀리지를 않고…. 그렇게 머릿속에서 강온(强穩)이 핑퐁을 하며 갈등을 겪다보면 빠져나갈 구멍을 적당히 마련해서는 어중간한 강도(强度)의 글을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몇 걸음을 물러서서 유(柔)하게 만들어 발표하는 글인데도 간혹 지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용이 너무 강한 게 아니냐며 반문을 하곤 합니다.

문제는 그 반응입니다. 말 없는 다수 쪽의 인사들은 전화를 이용해 내용의 강도를 거론하며 속이 시원하다는 정도의 반응을 나타내고 마는데 말 많은 소수 쪽의 인사들은 사뭇 다릅니다. 댓글을 통하여 노골적인 인신공격을 퍼붓습니다. 어느 댓글의 경우에는 분노가 치밀어 대거리를 하고 싶지만 익명으로 포장된 공간이라 연락처를 알 길이 없어 속으로만 분을 삭이고 맙니다.

오늘도 신문이며 방송에서는 말 없는 다수 대 말 많은 소수의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마치 나라 전체가 두 토막으로 갈라져 으르렁거리는 듯싶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돌팔매를 맞을까봐 침묵한 채 구경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말없는 다수의 의도대로 이 나라가 흘러갈 것이라고. 지나간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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