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의 부인께선 안녕하신가

2014.06.24 13:47:52

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당신이 등산을 다녀오면 왜 그리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구요"

산악회에서 추진했던 '가거도 섬 여행' 특별이벤트에 결혼 33주년 기념으로 함께 참가하고 돌아와 아내가 던진 말이다. 1박 2일로 다녀온 그 행사가 몹시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작년 여름, 으레 술자리로 끝이 나곤 했던 친구들과의 산행을 박차고나와 홀로 산악회에 가입해서 첫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어지간히도 흥분했었다. 머지않아 나는 꽤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니 매주 참가하는 산행이 즐거움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산우들의 환대와 격의 없는 친절은 당연히 나의 신명에 기름을 끼얹어주는 필요조건이었다. 그러니 엉덩이춤으로 배낭을 꾸리고, 돌아와 콧노래로 배낭을 풀었다. 아내는 그런 내게 잠시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에 편승했던 듯했다. 전에 없던 밝은 표정이 시앗 본 중늙은이로라도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어린 씨받이를 바라보는 삼대독자의 얼굴을 대한 느낌이었을까?

그런데 이제야 모든 의심의 실타래가 풀렸다는 듯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니, 그 말을 듣는 나 또한 기분이 개운했다.

재작년이었나? 공무원으로 퇴직한 친구 이야기가 뒷담화가 되어 풍문처럼 나돈 일이 있었다. 삼십여 년의 공직 생활 속에서 책임과 의무를 삶의 전부로 살아오던 친구였다. 이제 무거운 의관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취미생활이나 즐기리란 계산으로 탁구 동호인 모임에 나갔단다. 막상 가보니 비슷한 연배는 말할 것 없고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탁구를 즐기는 모습이 잔뜩 긴장했던 자신을 무장해제 시키더란다. 같이 땀 흘리며 대화를 나누다보니 허물없이 형님, 아우, 누이, 오라버니 하며 지내게 되더란다.

그 곳을 천국같이 여기게 된 친구가 기왕이면 아내도 함께 하면 좋겠단 생각에 탁구장으로 데려갔더란다. 그저 자식들 뒷바라지나 하며 살림밖에 모르고 지내던 아내에게도 퍽 살갑게 대해주는 그들이 좋아보였단다. 그런데 엉뚱한데서 일이 터졌으니 실인즉 주변에 관대하고 헙헙하게 구는 남편이 아내에겐 갑자기 낯설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오라버니, 우리 내기해요~옹!"

아내보다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4,50대 여인들이 호호 깔깔 교태를 부리며 남편에게 매달리고, 허허허 어린 동생들 응석 받듯 내기에 응해주곤, 아이스크림이야, 칼국수야, 생맥주를 먹고 마시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끝내 인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언제 한 번 당신이 나한테 그래 본 적 있어욧?"

분노의 정점에서 아내가 터트린 그 말은 다른 여인들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기도 했지만 남편이 자신에게 살갑게 굴어본 때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서운함 때문이었다. 이제 현직에서 은퇴도 했겠다, 함께 여행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찾아 먹으며 지난(至難)했던 과거를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심정 탓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풀어지지 않은 아내의 울분과 아내에 대한 남편의 야속함이 평행선을 달리며 냉전은 한동안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뒤로 그 친구를 아는 우리들은 서로서로 안부를 묻곤 했었다.

"어이 친구, 사모님께선 평안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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