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과 영화 명량

2014.08.19 17:59:04

대한민국의 8월. 대다수 국민들이 감동과 위로가 넘쳐 난 달로 기억될 듯하다.

감동과 위로를 던져 준 주체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이다.

**큰 울림 불러일으킨 리더십
4박5일 방한 일정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큰 울림을 불러일으켰다. 그 울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말이 연일 큰 울림을 불러낸 것은 낮은 곳에 임하는 행동이 말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장애인을 어루만지고, 소외된 약자를 위해 기도하는 교황의 모습이 그의 말을 천근보다 무겁게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행보는 이야기로만 듣던 '파격'의 운율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일상처럼 늘 강조해온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에 대한 역설은 어디서든 설파됐다.

권위를 내려놓고 이웃처럼 다가가는 따뜻한 인간미는 부수적인 선물이었다. 젊은이들에게 실천적 삶의 자세를 알려준 교황의 행보는 국민들의 오감(五感)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픔이 참 많은 세상이지만 '나 하나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잊혀져가던 문제들. 교황은 방한기간 내내 한국 사회의 아픔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지난 14일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의 말을 전했다. 16일에는 음성 꽃동네에 가서 장애아동들을 만나 안아주고 축복했다. 17일 명동성당 미사에는 한국사회의 상처로 대표되는 위안부 할머니들, 밀양 송전탑·강정마을 거주민, 쌍용차 해고자 등을 초청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정작 우리 스스로가 외면한 우리들의 문제를 놓치지 말고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는 겉으로 보이는 부와 명예가 아니라 평화와 우정,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이다.

교황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만이 아니었다. 지난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아시아 청년 대회에서는 실업으로 고통 받는 청년들의 울부짖음에 화답했다. 이들의 고민이 담긴 뮤지컬 '돌아온 탕자'가 공연될 때는 직접 무대 위에 앉아 청년들과 호흡하기도 했다.

약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접촉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라는 것은 교황이 한국 방문을 통해 꾸준히 전한 메시지다.

'독백이 아닌 대화를 하라'는 메시지는 네 탓만 하며 갈등과 분열에 멍든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 명량이 관객을 감동케 한 것도 그랬다. 영화에 묘사된 리더십 중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를 꼽기도 하지만 '백성을 향한 충의(忠義), 승리를 백성이 가져다 준 천행(天幸)'으로 여기는 리더십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이 영화는 1천36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를 제쳤다. 역대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명량의 흥행몰이는 주연배우의 절제된 명연, 할리우드 해상 블록버스터에서도 시도하기 어려운 61분에 달하는 해상전투신이 큰 역할을 했다.

교황 방한과 영화 명량이 국민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느끼게 한 배경은 무엇일까. 대화를 통해 평화와 화해를 이룰 능력, 분열을 치유하고 위기를 극복할 리더십에 방점이 찍힌다.

**남긴 메시지 똑바로 깨달아야

한데 정치권의 현실은 어떠한가. 갈등과 분열이 극단화된 행태로 나타난다. 세월호 참사 넉 달이 지났지만 세월호 특별법 하나 처리하지 못해 입씨름만 이어간다. 여야가 '네 탓'만 하며 독백을 하니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국회에서는 100일이 넘도록 법률안 하나 통과시킨 것이 없다. 끝없는 정쟁만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국민을 바라보고, 위하는 정치가 아니다. 그들만의 난장판 싸움일 뿐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역병처럼 번져 있는 갈등과 분열도 문제다. 이념의 틀에 갇혀 상대를 질시하고, 조작이 만들어 놓은 틀에 사로잡혀 '너와 나'를 가른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보다 내 주장만 늘어놓는 독백을 하니 교육현장에서는 진보·보수 갈등이 일고 있다. 기업에서는 노사분규가 끊이질 않는다. 건전한 논쟁으로 볼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교황과 영화 명량이 남긴 메시지를 똑바로 깨달아야 한다.

저마다 아전인수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갈등과 파행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사회지도층들은 약자들을 품에 안고 그들의 아픔을 체휼(體恤)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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