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이옛길에 가면 울릉도와 독도가 있다

2014.08.24 17:34:46

김애중

얼마 전 친구들과 산막이옛길을 다녀왔다.

산막이옛길은 괴산호를 끼고 있는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진 정감어린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만들어진 산책길이다.

처음 그 길에 갔던 때가 생각난다. 전국적으로 여기저기 둘레길이 생기기 시작할 즈음이었고 초기 산막이옛길이 완성되어 막 신문에 알려진 때였다. 칠성이 고향인 나는 지인들과 함께 서둘러 그곳을 찾았었다.

그때는 주차장도 협소하고 편의시설도 별로 없었지만 호젓하니 정말 좋았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가는 곳마다 야생화와 소나무가 사람들을 반겼다. 호수와 함께 어우러지는 그림같은 풍경을 보노라면 그곳이 내 고향마을이란 게 괜히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등잔봉을 지나 산 아래로 보이는 한반도 지형을 감상하고 천장봉을 거쳐 내려와 아늑한 산책길로 돌아오는 코스는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졌다. 어느새 괴산을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번에 가보니 주차장도 넓어졌고 주변에 이런저런 가게도 생겼다. 지역 농산물 판매장도 있고 펜션이나 음식점도 많아졌다. 처음 보았던 초기 산막이옛길 풍경과 느낌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편리해지긴 했지만 여느 관광지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산책길 초입 고개 마루에 올라서니 '사계절이 아름다운 산막이옛길'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념비가 보인다. 2011년 괴산군에서 만든 것이다. 기념비에 있는 글을 보니 하늘과 땅, 산과 강과 바람, 바위와 소나무, 산새와 들꽃이 조화를 이루는 산막이옛길을 만들고자 했다는 내용이다. 애 쓴 사람들의 정성이 엿보인다.

여전히 산막이옛길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길은 옛길이건만 호수는 옛 호수가 아니었다. 산책길 끝 산막이 마을 앞에 다다르니 호수 가장자리에 둥그렇게 솟아난 것이 두 개 보이는데 뭔가 어색했다.

자세히 보니 이상한 재질로 바위모습을 꾸민 인공 바위섬인 것이었다. 더구나 그 위에 작은 소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더욱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올라가는 계단도 있다. 정말 눈에 거슬렸다. 이게 뭐지· 누가 왜 이런 짓을……. 주변에 다른 일행들도 이 광경을 보고 너무나 생뚱맞다며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궁금증이 일어 근처에 있는 마을 어른들에게 이상한 바위섬에 대해 연유를 물었다.

"아, 그거요· 하나는 울릉도고 그 옆은 독도래요. 저 위에 산에서 보면 한반도 지형이 보이는데 울릉도, 독도가 없어서 만들었대나 뭐래나…….한 2년 정도 됐을걸. 원래 버드나무 군락지였는데 그거 다 베어버리고 만들었지. 바위섬 주변에 자꾸 풀이 커서 그거 깎는 것도 일이라오."

난 너무나 속이 상했다. 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인공 구조물이라니. 가지런한 치아 끝에 번쩍이는 금니처럼 튀는 느낌, 은은한 수묵화 위에 반질거리는 유화물감이 묻어있는 듯 한 부조화의 극치였다. 아무리 우리가 울릉도, 독도를 사랑하기로서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산막이 마을 주변이 어수선하게 개발되어 못마땅하던 터에 이젠 인공바위섬까지 등장하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아닌, 관리하고 모셔야 하는 애물단지가 될 게 뻔한 인공 바위섬이다.

초심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산막이옛길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처럼 '하늘과 땅, 산과 강과 바람, 바위와 소나무, 산새와 들꽃이 조화를 이루는 산막이옛길'을 만들고자 했던 그 고운 마음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새롭고 인위적인 것이 점점 더 많아지는 옛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향을 잃은 것처럼 상실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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