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 세끼

2015.03.16 15:44:22

윤기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위 글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는 유난히 먹는다는 것에 대한 숭고함과 엄정함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그가 언급하는 끼니는 주로 밥을 구해야 한다는 생존과 벌이에 대한 것이고, 거기에는 쌀과 식재료를 가지고 끼니를 차려내야 하는 이-주로 여성-에 대한 언급은 배제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진저리나는 밥'을 실제로 평생 육체가 쇠진할 때까지 '밥답게' 음식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여성들은 얼마나 '진저리'가 나겠는가.

하물며 시대가 달라져 이제는 밖에서 '밥'을 벌어오며, 집에서 '밥'까지 해야 하는 소위 직장여성들은 남자가 같이 거들지 않을 때 거의 그 노동력은 폭력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여성들이 그 힘겨움을 호소할 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헌신'이며, 맞벌이를 해도 '으레 밥은 여자가 하는 것이니까' 등으로 여성성을 내세우며 억누르는 남자들 반응을 많이 보았다.

직장일하며 집안 살림까지 잘 하는 주부를 '슈퍼우먼'이니 '현모양처'라는 말로 미화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밥을 한다는 것'은 한두 달도, 심지어 몇 년으로 끝나는 것도 아닌, 숨이 멎을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삼시 세끼'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지극히 평범한 끼니 해결의 모습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는 발상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누구도 하루 세 번 밥을 해먹는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데,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 출연한다지만 거기서 어떤 볼거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런데 프로그램은 화제가 되고 출연자들의 몸값도 치솟았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면, 한 끼를 해결하는 데 드는 노고에 누구라도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끼니를 차려내는 인물들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만약 여자들이 나섰다면-여자들이 집에서 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므로-프로그램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직업적 요리사 외에 남자들은 집에서 어쩌다 이벤트성으로 요리를 하는 적은 있지만 몇 날 며칠 지속적으로 전담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남자들이 끊임없이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밥하고 찌개 끓이니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프로그램은 '여성의 노고'에 대한 반면교사다.

항간에 나이든 남자들을 '삼식이'라 부르는 다분히 조소어린 단어가 있다.

퇴직해서 집에 있게 된 남자들이 하루 세 번 꼬박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 붙여진 별명이다.

감히 말하건대 이는 단지 세 끼에 소요되는 경제적 측면과는 거리가 멀다. 남편들이 먹는 밥과 반찬이 아까워서 이런 단어가 생겨난 것이 아니란 것쯤은 모두 알 터이다.

여자들은 일생 조수처럼 밀려오는 삼시 세끼의 노동에 허덕여왔다.

삼시 세끼는 단지 하루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평생'의 동의어다.

부부는 이제 '같이 만들고 먹어야' 한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만 먹으려 할 때 남편은 동반자가 아니라 '삼식이'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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