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당한 위안부 할머니 삶의 보상은

2015.08.18 14:33:59

#-"나는 광복 때 다시 태어난 거야. 나라만 빼앗기지 않았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충북 보은 속리산 기슭서 외롭게 노년을 보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7) 할머니.

그녀가 지난 11일 청주 배티공원에 세운 '여성인권수호 기원상' 제막식에서 한 말이다.

일본군의 총칼 앞에 처참하게 유린당한 열여섯 소녀는 어느덧 백발노인이 됐지만, 기억회로만큼은 70년 전의 공포 속에 여전히 멎어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절규

이 할머니는 "행사장에 가보니 충북에서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나 뿐이라는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가슴 속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허무하게 세상을 등진 한을 풀려면 일본 정부가 서둘러 스스로의 만행을 인정하고 피해자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녀는 틈날 때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서 멀지 않은 암자에 찾아가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한다.

#-"이대로 (일본을) 내버려두면 한없이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광복 70주년의 기쁨이 가득한 15일 오후 청주청소년광장 인근에 설치된 충북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호소하며 한 말이다.

길 할머니는 이날 "여러분에게 부탁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대로 그냥 (일본을) 내버려 두면 한없이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으니 여러분이 합심해서 저 사람들(일본)이 사과할 수 있게 도와 주세요"라고 작심한 듯 말했다.

#-"창녀라 놀리는 한국인 더 못됐다."

'위안부' 엄마들은 남의 자식을 데려가 키우면서도 "더 좋은 집으로 갈 것을 내가 막을 게 아닐까"하는 마음에 죄스러워했고 행여 자식이 손가락질을 당할까봐 정부 등록도 미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박숙이(93) 할머니는 정부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일부러 늦게 했다고 고백했다. 박 할머니는 아이 셋을 데려다 키우고 있었다.

이 사연은 광복절인 15일 저녁 SBS스페셜 '최후의 심판, 엄마여서 미안해'에서 방영된 사연이다.

분명 '위안부'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자행한 강제 인력 수탈 중 하나였다. 일본은 10대의 어린 나이의 소녀들을 강제로 데려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만행을 저질렀다. 광복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 위안부 할머니들은 배상도 무엇도 아닌 오직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며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는 결국 우리 모두를 실망케 했다. 한국과 여러 선진 우방국, 그리고 전 세계 역사학자들이 일본 과거 침략사에 대한 아베 총리의 진심어린 사죄를 기대했으나 거부당했다. 명확한 반성과 사죄 없이 '말의 성찬'으로 일관한 아베 총리 개인의 '감상문'이란 느낌을 줬다. 역대 내각의 담화를 부인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베 내각이 전 세계인의 바람을 저버리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는 '존엄을 상처받은 여성'이라는 한마디로 교묘하게 피해갔다.

일본은 반성하고 사과해야

과거 이웃 침탈에 대해 "역사에는 마침표가 없다. 항구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 독일 정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역사인식이다.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일본의 민낯이다.

사과는 관계 회복의 열쇠이자 갈등과 위기를 풀어나가는 상생의 소통법이다. 정신의학자인 아론 라자르는 사과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갈등조정수단이라고 규정한다.

심리학자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는 '사과의 다섯 가지 언어'에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미안해' 뒤에 '하지만' '다만' 같은 변명을 붙이지 마라,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명확히 하라, 개선 의지나 보상 의사를 밝히라,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용서를 청하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반성 없는 이중적 태도의 꼼수와 교언(巧言)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작 일본은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들의 몫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살아 계신 50여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절규와 바람을 말이다. 그것을 지켜주는 것이 후손들의 마땅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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