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후미코 혈육 부강 방문 '남다른 감회'

타카시씨, 16일 살던 집·헌병대자리 등 둘러봐
후미코 수기의 백미가 쓰여전 부강역사도 방문
현재 일본 야마나시 현에서 생가·시비 등 관리

2015.10.19 14:30:17

가네코 타카시(가운데)가 16일 부강파출소(당시 헌병대자리)를 방문하였다. 좌측은 곽창록, 우측은 이문창씨.

[충북일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가네코 타카시(金子敬·1944년생) 씨가 한국아나키스트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 도움으로 지난 16일 세종시 부강면을 찾았다.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여인으로 잘 알려진 가네코 후미코는 1912~1919년까지 7년 동안 부강에 거주한 바 있다. 그녀는 1919년 일본으로 귀국한 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가 됐고, 여기에는 부강에서의 조선인 탄압과 3.1운동 목격 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16일 부강초등을 방문한 가네코 타카시 씨. 그는 생존해 있는 후미코의 가장 가까운 혈육으로 외가쪽 조카가 된다.

타카시 씨는 후미코의 외가쪽 친조카로 현재 야마나시현 소구마치에서 후미코의 생가와 시비를 관리하고 있다. 타카시 씨는 먼저 세종시 부강초등학교(교장 민방식)를 방문해 곽창록 씨로부터 후미코가 다녔던 부강심상학교와 그녀의 학창시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어 후미코의 자전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원제: 何が私をかうさせたか)에 등장하는 부강파출소(당시 일본 헌병대 자리)를 방문, 일대를 둘러봤다. 후미코의 수기에는 조선인이 매질을 당하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서술돼 있다.

'그중에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헌병대 건물이었다. 카키색 제복을 입은 헌병이 마당으로 조선인을 끌어내 옷을 벗기고 알몸이 된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고 있다. 하나, 둘, 헌병이 새된 목소리가 들린다. 맞고 있는 조선인의 울름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그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광경이 아니다.'-<자전 수기 134쪽>

제국주의 권력의 폭악성은 그녀가 무정부주의가가 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는 이어 후미코가 7년 동안 생활했던 부강면 부강리 358번지를 방문,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가네코 후미코

후미코는 이 집에 양녀로 왔지만 사실상 식모생활을 하며 할머니·고모 등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온갖 학대를 받은 바 있다.

타카시 씨는 집 내부도 둘러보고 싶어했지만 현재 강 아무개 씨의 개인의 소유로 돼 있어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부강역에서 다시 한번 감회에 젖었다.

부강역 건널목 철길은 학대를 견디지 못한 후미코가 1차 자살을 시도했다가 열차시간을 잘 몰라 성공하지 못한 곳이다.

또 부강역은 그녀가 7년의 핍박을 끝내고 일본으로 재귀국을 하기 위해 승차를 했던 역으로, 그녀 자전 수기의 백미가 쓰여진 공간이기도 하다.

'-아아, 기차여! 7년 전 너는 나를 속이고 데려왔다, 그리고 나를 오로지 혼자 고통과 시련 속에 남겨두고 가버렸다. 그 사이 너는 몇 백 번 몇 천 번 내 곁을 지나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곁눈으로 흘끗할 뿐 말없이 지나쳤구나. 하지만 이번이야말로 너는 나를 마중 와주었다. 너는 나를 잊지는 않았던 것이다. 자, 어디라도 데려 가다오! 어서 어서 어디라도. 그냥 빨리 이 땅에서 데려 가다오!'-<〃173쪽>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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