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권력의 함정

2015.10.20 15:43:38

[충북일보]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 곁에는 항상 사람이 따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갈량으로 대표되는 현자들이 한 축을 이룬다. 또 다른 축은 중국 한나라 말기 영제(靈帝) 때 조정을 장악했던 십상시(十常侍)처럼 평소엔 굽실거리다 결정적 순간에 배신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무리다.

지도층 조력가들 전횡 일삼아

두 부류 모두 평소엔 이웃이나 친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움이 될 조력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적재적소에 맡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씁쓸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신뢰한다던 조력자들이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법적 처벌 대상이 되곤 했다. 국정을 뒤흔든 '비선 잔혹사'가 넘쳐났다.

역대 정부는 모두 한 차례 이상 비선 실세 논란을 겪었다. 논란은 모두 검찰 수사와 대통령의 최측근 또는 가족이 처벌을 받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이때마다 공직 기강 해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도 폭락했다. 정식 지휘 계통이 아닌 비선 실세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국정 운영의 불투명성, 불합리성을 뜻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직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민간인 사찰 문제로 '영포회'의 존재가 불거지면서 거센 후폭풍이 불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형님이 말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는 '봉하대군'으로 불리며 인사 개입 의혹 등으로 주변에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김대중 정부와 김영삼 정부 때는 아들이 문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홍일·홍업·홍걸씨는 '홍삼 트리오'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소통령'으로 불리며 각 정부 실세로 통했다.

박근혜 정부도 그랬다. 지난해 정윤회씨를 비롯한 3명의 청와대 비서관들이 국정을 농단, 말들이 많았다. 더 나아가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권력싸움을 하다가 문건이 언론에 폭로되기도 했다.

진위여부를 떠나 매 정권 때마다 '문고리 권력'이란 신조어와 함께 중국 역사의 십상시가 환생한 듯했다.

지방권력의 핵심인 자치단체장 주변도 예외는 아니다. 조력자의 역할에 따라 구설수에 오르내리곤 한다. 지자체의 여러 자리에 앉아서 또는 막후에서 호가호위하며 인사와 이권 개입, 기존 사업 뒤집기 등 횡포를 서슴지 않고 있다.

검찰은 최근 6·4 지방선거 당시 이승훈 청주시장 선거캠프 선거 운동원이자 당선 이후 청주시 별정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L씨 등을 조사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앞서 검찰은 이 시장의 선거기획사 대표 P씨를 체포해 조사를 벌였다. 그가 대표로 있는 컴퍼니에 대한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P씨는 선거가 끝난 뒤 청주시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를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 도내 기초자치단체 곳곳서 단체장 측근들이 조력자임을 내세우며 횡포를 전횡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논란의 핵심은 조력자의 정책방향 제시에 따른 혼란과 특혜 의혹, 인사·돈 문제 등에 방점이 찍힌다.

문고리에서 권력이 왜 나올까. 문을 열면 그 안에 최고의 권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아는 사람, 또 그 아는 사람이 아끼는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힌다는 것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가진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적임자가 아닌데도 아는 인물이란 점 때문에 일을 맡겼다가 실패로 끝나면 지도층 자신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통과 쓴소리 가까이 해야

권력자를 따르는 참모 내지 서브 권력자들이 진정성과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면 공동체의 안녕을 보장받지 못한다. 지도자의 통치력도 훼손되기 마련이다.

소통과 쓴소리를 낼 수 있는 지도층 측근조력자가 필요한 이유다. 권력자는 쓴소리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해선 안된다. 이는 한 공동체가 성공하는 길이고 자신이 사는 길이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리더는 자신의 뜻을 키우고 국민의 안녕을 도모하는데 도움이 될 인재를 가까이 했다. 중국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 후스(胡適)는 평생 최고 권력자인 장제스(蔣介石)의 쟁우(諍友:잘못을 말해주는 친구)였다. 후스는 장제스에게 쓴 소리가 담긴 책을 한권 건네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문꼬리 권력자로 인한 기가 막힐 일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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