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정치판의 단상(斷想)

2016.03.01 17:40:19

[충북일보] 치안이 허술한 골목에 두 대의 중고 자동차 보닛을 열어 놓은 채 방치해 둔다. 한대는 유리창을 조금 깨뜨려서, 다른 한대는 온전한 상태다. 일주일 후 두 자동차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를 나타냈다. 온전한 상태의 자동차는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면 유리창이 조금 깨진 자동차는 낙서투성이에 배터리, 타이어까지 전부 사라져 버렸다.

유리창을 조금 깨놓은 게 걷잡을 수 없는 파괴로 이어진 것이다.

불안·불신만 부추기는 정치력

미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한 실험이다.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면 나중에 더 큰 사고나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예방 심리한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으로 지칭된다.

작금의 한국의 정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제 정치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라기보다는 단지 고급 직업의 일부분으로 전락한 듯하다. 여야 모두가 그렇다. 어느 정당에서나 조차 과거에 볼 수 있었던 패기에 가득한 초·재선 의원들의 집단적 의견표명과 당 지도부를 향한 혁신의 목소리는 찾아 볼 수 없다.

지금보다도 더 엄혹하고 어려웠던 시절에도 각 정당에서 쇄신파가 있었다. 소장파도 존재했다. 총재라는 절대권력,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지역 패권적 상황 앞에서도 총재를 비롯한 지도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터져 나왔다. 지금 중진의원이라는 무게를 지닌 의원들은 이러한 혁신과 변화의 바람을 타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지금의 정치권은 어떠한가. 4·13총선을 앞두고 오직 공천권 앞에서 목을 움츠리고 있는 형국 그 자체다. 상대당의 선거에 지대한 공헌을 이룬 사람을 모셔다가 공천권은 물론이고 당권까지 바치고도 모두 침묵이다.

여야 대립구조가 갈등과 반목을 증폭시키는 데 이어 국민 불안, 정치 불신만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이다.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원대한 사명감과 공평한 세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이미 버린 지 오래인 듯하다. 오직 직업으로서의 정치에만 매달려 공천을 받기 위한 침묵과 굴종을 스스로 감내하고 있다. 30대의 패기와 열정이 넘치던 모습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겠다던 포부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한마디로 정치력 상실이다. '깨진 유리창'이론과 흡사하다. 이를 그대로 두면 한국정치의 미래는 없다.

4·13총선 당선을 겨냥해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과 여기에 기생하는 자들이 선거정국을 혼탁하게 한다. 공천 전 단계에서부터다.

충북지방경찰청은 4·13 총선을 앞두고 도내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22명을 적발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현재다.

경찰은 이 중 1명은 이미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14명은 내사, 7명은 내사 종결했다. 향후 처벌받는 선거사범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예비후보들의 공약도 남발되고 있다. 나라 곳간을 거덜 내고 민생을 망칠 퍼주기 공약, 포퓰리즘 공약이다.

지역민들의 갈등과 반목만을 부추기는 편가르기 식 행태도 곳곳서 나타난다.

'변화의 정치' 유권자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경이 선제(先制) 대응 의지를 다잡고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예비후보들의 위법 혐의를 철저히 추적하길 바란다. 돈 선거, 흑색선전, 공무원·브로커의 불법 선거 개입에 대한 집중단속은 당연하다.

정치가 바뀌려면, 정치인을 바꿔야 한다. 국민의 삶을 바꾸려면 정치를 바꿔야 한다. 이런 대명제 속에서 유권자들은 또 다시 선택해야 한다. 갑질 또는 고급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을 배격해야 한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을 4·13총선서 선택했으면 한다. 변화의 정치는 각성된 유권자의 몫이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는 것은 범죄를 부추기는 행위다. 지금부터라도 깨진 유리창을 교체하고 상처 난 곳들은 수선해야 한다. 그것만이 건강한 정치를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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