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진천군 백곡면 한 야산 중턱에서 5년 전 4살배기 딸을 암매장한 B(38)씨가 고개를 숙인 채 경찰과 유기장소를 찾고 있다.
ⓒ김태훈기자
[충북일보]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어야 할 아이가 사라졌지만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친 엄마의 손에 짧은 생을 마감하고 땅 속에 묻인 한 여자아이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5년이 지나서야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에 나선 한 주민센터 공무원의 신고로 세상에 드러났다.
청주청원경찰서는 친모에 의해 숨진 의붓딸 승아(당시 4세)양을 야산에 암매장한 안(38)씨를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승아양을 물이 가득 찬 집안 욕조에 담궈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되는 친 엄마 한(여·36)씨는 지난 18일 밤 9시50분께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母, '소변 못 가린다' 4살 딸 욕조에 가둬
현재까지 진행된 경찰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이번 사건은 5년 전인 지난 2011년 12월 중순께 발생했다.
당시 승아양은 친모 한씨·계부 안씨와 함께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한 다가구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미혼모인 한씨에게서 태어난 승아양은 도내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다 친모와 안씨가 결혼하며 함께 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일 안씨가 출근을 하겠다며 집을 나선 뒤 한씨는 승아양이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욕조에 가둬 숨지게 했다.
당시 한씨는 출산을 앞둔 만삭 상태였다.
이날 밤 9시(추정)께 퇴근해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안씨는 "처벌이 두렵다"는 한씨의 말에 숨진 아이를 유기해 은폐하기로 마음먹었다.
2~3일 정도 아이의 시신을 베란다에 방치한 안씨 부부는 차량에 숨진 승아양을 태워 집을 나섰다.
안씨의 고향인 진천 한 야산으로 가 미리 준비한 삽으로 1m30㎝(추정) 깊이의 구덩이를 파 숨진 딸을 이불로 감싸 유기했다.
안씨 부부는 범행 다음해인 지난 2012년께 청원구 율량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안씨는 경찰에서 "퇴근을 하고 나서 아내가 아이를 숨지게 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처벌을 두려워하는 아내와 함께 숨진 아이를 진천의 야산에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숨진 친모 유서 등으로 드러난 범행 사실
경찰은 지난 17일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을 벌이던 한 공무원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했다.
최초 경찰조사에서 '아이가 살아있다'던 부부의 거짓말은 하루가 못 돼 전모를 드러냈다.
지난 18일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먼저 조사를 받은 친모 한씨와 안씨 모두 '아이를 평택 한 고아원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아이를 키우기 힘든 상황이어서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고아원에 아이를 유기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진술이었다.
특히 안씨의 독단적인 결정이어서 한씨는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11시께 경찰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한씨는 같은 날 밤 9시50분께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사과정에서 한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한 경찰이 한씨를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았다가 숨진 한씨를 발견했다.
한씨 주변에선 '아이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며 '정말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 내용 등을 토대로 안씨를 긴급체포, 집중 추궁해 안씨로부터 '5년 전 숨진 딸의 시신을 유기했다'는 자백을 확보했다.
곽재표 청주청원경찰서 수사과장은 "이번 사건을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수사과로 넘겨받아 조사하고 있다"며 "안씨의 진술이 번복된 부분이나 숨진 한씨의 살해 혐의 등을 집중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태성기자 ts_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