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2016.09.27 17:45:38

박선예

수필가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마음 가닥을 정리하려고 탄금대에 올랐습니다. 새벽 기온은 이미 가을인데 숲속은 아직도 초록물결 여름이군요. 천천히 숲의 기운을 들이마셨습니다. 참 좋습니다. 온 몸이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어디선가 짙은 향이 풍겨옵니다. 아, 보라색의 칡꽃이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군요. 이런, 잊고 있었네요. 이맘때면 숲속의 향은 칡꽃이 책임진다는 사실을.

칡!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먹어봤던 칡뿌리의 맛이지요. 쌉쌀하면서도 달콤하던 맛 말입니다. 생각만으로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여 옵니다.

칡은 산기슭의 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요. 줄기는 길게 뻗어가면서 다른 물체를 감아 올라가지요. 꽃은 대부분 짙은 보라색이지요. 긴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어난답니다. 참 예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모양새이지요. 그래서 요즘 관상용으로도 많이 이용된답니다.

칡뿌리는 굵고 기다란 고구마 같답니다. 어른 팔뚝 굵기 정도는 작은 것에 속하고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칡뿌리도 많이 있다지요. 영양분을 뿌리에 저장하는데 그 뿌리는 오래전부터 약용이나 식용으로 이용되어왔답니다. 잎은 가축의 사료로도 쓰이고 줄기는 밧줄이나 벽지를 만드는 재료가 된답니다.

칡은 성장력이 강한 덩굴식물이라서 금방 숲을 덮어버린답니다. 칡덩굴에 가려진 나무와 식물들은 광합성작용을 하지 못하여 서서히 말라죽게 되지요. 그러고 보니, 칡은 우리에게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한 식물이군요.

어제 막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자매처럼 지내던 지인들 몇 명과 말입니다. 낯설고 물선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다 보면 더욱 돈독해 지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크게 어긋나고 말았지요. 여러 날 동고동락을 하다 보니 개개인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 남 탓만 하는 사람, 누가 뭐라 하든 개의치 않는 사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궂은일을 맡아하는 사람들로 말이죠. 그러다보니 여행 내내 편치 않았답니다.

여행지의 후텁지근한 날씨와 벅찬 여행일정 때문이라 여기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대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더군요. 그래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심란합니다.

문득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칡의 잎 모양은 꼭 삼형제가 오순도순 모여 있는 모습이랍니다. 잎 모양이 조금 다른 삼형제는 아주 우애가 좋답니다. 햇빛을 무척 좋아하는 칡잎 삼형제는 햇볕을 골고루 받기위해서 서로 양보를 하였다지요. 형인 가장자리의 잎 둘은, 가운데 자리한 동생의 잎 쪽으로는 일부러 자라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칡잎 삼형제의 잎 모양이 서로 다르다는 군요. 결국 칡잎 삼형제는 햇볕을 골고루 받게 되었지요. 그러자 칡은 더욱 활발한 광합성을 하게 되었고 그 대가로 가장 강한 식물로 존재하며 이 시기에 강력한 향기를 뽐내는 넝쿨 식물로 성장하였답니다.

하찮은 칡도 어려울 때 서로 의지하고 양보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는 어떠하였는지 새삼 뒤돌아봅니다. 부끄럽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좋다한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편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칡꽃 향기 속에서 마음 가닥을 하나하나를 살펴보았습니다. 받은 상처만큼 상대방도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야 엉킨 실타래가 풀린 듯합니다. 가벼워진 마음만큼 오늘밤은 깊디깊은 꿀잠에 빠질 성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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