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2016.10.11 18:16:51

장정환

에세이스트

공업지역에 사는 나방의 색이 시골 나방보다 더 어둡고, 유럽의 도시에 사는 블랙버드란 새는 시골의 블랙버드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댄다고 한다.

도시의 소음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더 큰 소리로 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들조차 깨우친 것이다. 어떤 새들은 소음이 잦아든 밤에만 울도록 적응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의 사람들은 더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여린 사람들은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밤에만 도시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는지도 모른다.

분주한 소음이 소멸될 즈음, 문자 메시지의 신간 광고문구가 내 눈길을 확 끌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은 무엇인가?"

자기위해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곧장 컴퓨터 전원을 켜고는 책을 주문했다. 평소에는 하루면 배송되던 책이 3일이나 걸려 나를 애태웠다.

현대의 지성 148명이 하나씩 자신 있게 내놓은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은 대체 어떤 것일까? 그 거대한 질문과 위대한 대답들은 무엇일까?

SF영화 '매트릭스'의 이론적 배경이 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빅 히스토리'의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제시한 '창발(創發)' 개념이 등장하고, 넛지의 저자 리처드 탈러는 '몰입'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마음속 암흑물질인 프로이트의 '무의식', '마음은 체화된 은유로 생각한다'는 시몬 슈날의 생각, 그리고 백여 개의 아름다운 설명들.

나를 감동시켰던 위대한 생각들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모든 일을 접은 채 하루꼬박 시간도 잊었다.

그 수많은 이론 중에서 단연코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0순위로 꼽혔다는 사실에 난 주목했다.

이론을 우아하게 만드는 것은 '최소한의 가정으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힘', 혹은 '단순한 원리 몇 개의 이론으로 심오한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는 명징함에 있을 것이다.

밈(meme)의 저자 수전 블랙모어는 "당연히 다윈이다"라고 칭송하며, 리처드 도킨스 조차 "다윈은 무엇보다 우위에 있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을 통해 생명의 역사에 예상된 진화는 없다고, 생명은 생존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끝없는 경쟁의 존재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비록 지적이며 고도로 사회적인 존재이지만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당혹해 한다.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체화한 인간은 그래서 버겁고 불안하다. 인간이라면, 아니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다윈의 자연선택의 틀 속에 갇혀서 아등바등 대는 격이니 서로가 가련하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책의 마지막 장에 케빈 켈리의 아주 아름다운 글을 실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 몸의 90%는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로 이루어졌다."

별들이 폭발하면서 생겨난 먼지로 만들어진 우리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수만 광년 전에 떠난 고향을 대하듯이 위안을 얻는다.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이라는 매트릭스의 심연은 너무나 깊어 누구도 그 끝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반사체가 될 수 있는 발광체의 별들이 바로 내 곁에서 지금도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친구라는 별, 연인이라는 별, 어머니라는 별, 딸과 아들이라는 별, 이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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