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니까 가을이다

2016.10.12 19:27:35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올해 가을은 일찍 물듭니다. 쌀쌀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처연합니다. 참 힘겹게 견뎌왔는데 이제 바람에 조차 흔들려야 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사람 사는 것도 언제나 쓸쓸한 일입니다. 가슴에 물드는 가을을 힘들어 하며 작은 몸을 데울 온기를 기다립니다. 떨어지는 잎사귀에 마른눈물을 흘립니다. 뒤돌아보면 그리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뜨겁게 살던 날들을 뒤로한 채 마주하는 사람들에 시든 햇살처럼 애써 웃음 짓는 나를 보며 괜히 슬퍼집니다. 꽃이 진 자리에 바람이 머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립니다. 어쩌면 어두운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 인생이지요. 이 길에 가만 가만 돌부리에 채이지 않게 걸어가다 넘어지고 상처 나고 차가운 바닥에서 쓰러져 엉엉 울더라도 그래도 가야하는 것이 인생이지요. 산다는 게 다 쓸쓸한 거지요. 어차피 누가 살아줄 수도 없는 것이고 저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그런 길이기에 꿈꾸듯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요. 어둠이 내리고서야 길이 보입니다.

살며 내 안의 그리움에 귀 기울입니다. 조용히 삶의 저녁고개를 넘다보면 어느새 가을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들이 누운 들판에 메마른 잎들이 구르고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어깨를 들썩이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좀 쉬어도 나쁘지 않겠지요. 눈을 감고 바라보는 저 출렁이는 물가에 내 유년의 새들이 날아오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행복이 무엇일까요. 인생이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내가 찾으려 하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사는 게 뭘 바라고, 뭘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즐기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제껏 허겁지겁 살아오면서 세상 한번 제대로 보지도, 즐기지도 못하였지요. 이미 만들어진 길을 가면서 그 것이 최선이라 믿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세상의 욕망에 사로잡혀 드잡이 멱살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게 열심히 사는 것이리라 믿었지요. 그리고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비바람 맞으며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숨이 차 뒤돌아보니 나 혼자 서 있었습니다. 허투루 살지 않았지만 참으로 바보같이 살았습니다.

인생이란 여행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정 나에게 허락된 세월의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여행을 꿈꾸듯 시간 속에서 솔직한 나를 보고 싶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더디게 바라보며 그 멈춰진 시간에 맘껏 세상을 즐기고 싶습니다. 천천히 매일같이 만나는 불확실한 삶들 속에서 가슴 뛰는 행복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나를 봅니다. 떠남 속에서 자유를 얻고 버림으로서 풍요로울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즐거움이지요.

길 위의 나를 봅니다. 두려움과 희망은 한 가지임을 이제야 맑은 바람에게 배웁니다. 어둔 길이라도 떠나보지 않고 어찌 그 끝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가슴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야지요. 저 혼자 아파했던 날들을 벗어던지고 낮은 포복으로라도 기어이 떠남을 준비합니다. 아름다움은 필 때보다 질 때 보아야 그 가치를 아는 것이지요. 바람이 머무는 내 어깨에 별빛이 내립니다. 쓸쓸하니까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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