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정신의 본향 잊지 말자

2017.01.22 15:59:12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칼럼니스트

임진전쟁 당시 중봉(重峯) 조헌의 의병활동은 눈물겨운 항쟁이었다. 보은 현감을 끝으로 옥천 밤티로 낙향한 중봉은 후학들을 가르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려고 했다. 그런데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다는 소식을 접한다. 중봉은 통곡하며 신하 된 도리로 임금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팔도에 격문을 보내 선비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밤티로 몰려 온 의병들은 누구였을까. 제일 먼저 달려 온 사람은 바로 제자들이었다. 그 다음은 인근의 선비들과 스님들이다. 그런데 선비들이 데리고 온 의병 가운데는 자식들과 집에서 주인을 섬기던 노비들도 있었다.

필자는 현직에 있을 때 남부 3군 민간에 소장 중인 민간사료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 옥천 모 문중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료 하나를 찾았다. 바로 중봉 의병당시 참가한 이들의 기록이었다.

아버지가 의병에 참가하자 아들들이 부친을 시위한다고 나섰다. 그런데 아버지는 장자에게는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따라 오지 못하도록 하고 차자 이하는 나서도록 했다. 가노(家奴)들이 또 주인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고 나섰다. 이렇게 300명의 의병이 모였다.

임진전쟁 3대첩의 하나였던 진주성 싸움을 이끈 주인공은 천안 목천 출신 김시민 장군이다. 조선 시대 목천은 청주 목에 속한 땅이었다.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육전에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다.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괴산 충민사다.

김시민 장군이 3천여 명의 군사를 지휘해 2만 명 이상의 일본군 공격을 막아낸 것은 바로 결사항전 의지 때문이었다.

임진전쟁 초기 선조는 신입 장군을 내려 보내 남한강에 배수진을 치고 적진을 막으려 했다. 당시 조선군은 약 2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었으나 일본군의 조총에 재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도 의병들이 참가했다.

충주 음성지역에 살던 선비들은 의병들을 모아 일본군의 진입로인 조령에서도 항쟁을 한다. 당시 음성에 살던 선비 반인후(潘仁後)는 아들 반운익(潘雲翼)과 함께 의병들을 규합, 이 전투에 참가했다. 조령 싸움에서 의병장 반인후는 부상을 입고 아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됐다. 반의병장은 이 싸움에서 자신이 죽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충주에서는 조웅이 이끄는 의병들이 일본군의 배후를 괴롭혔다. 그는 중봉이 매우 신임한 인물로 스승인 조강(趙綱)을 따라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충주 앙성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막아 퇴각시켰다. 지방학계에서는 임진전쟁 기의(起義) 시초를 곽재우의 기병으로 보던 견해를 충주 조웅의 항전으로 수정해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음성 의병장 반인후의 기의는 조웅 보다 수개월 앞서고 있다. 반인후의 공로는 선조 때 조정에 알려지고 부자(父子)에게 선무원종공신 3등 직급을 받았다. 반인후 의병장의 역사적 사실은 8년 전 필자에 의해 선조 때 받은 공신녹권이 찾아짐으로써 그 사실이 확인됐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바로 의병장 반인후의 후손이다. 반 총장은 외교부장관 시절 조상인 반인후 의병장의 녹권을 찾았을 때 매우 기뻐하면서도 이를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겸허한 성품의 반 총장은 조상의 업적을 자랑하는 허세를 싫어한 때문이었다.

충청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일어선 기의의 중심이다. 일본은 임진전쟁 패인 중 하나를 의병들의 활약을 꼽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한국의 안보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수호 의지다. 반 총장이 최근 고향을 방문할 때 서민행보를 하면서도 가까운 곳에 있는 의병들의 유적이나 충절을 모신 사당을 찾아봤으면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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