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만든 이글루

2017.01.31 14:34:52

권혁조

충북대 산학협력 중점 교수

얼마 전 일요일 늦은 오후에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와 함께 집 앞 운동장에 쌓인 눈을 모아서 높이가 1m쯤 되는 자그마한 이글루를 만들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도 비슷한 것을 학교 운동장에 만들고 놀았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지금 눈이 쌓여 있을 때 또 만들어 보자고 성화를 부려서 만들기 시작했었다.

영하 10도는 되는 것 같은 추운 날씨였지만, 1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주변의 눈을 긁어모아 한 곳에 듬뿍 쌓아 놓고, 작은 삽으로 겉모양을 둥글게 다듬으며 내부도 파내어 이글루를 만들었다. 이제는 아이가 제법 덩치가 커져서 겨우 이글루 안에 몸을 구겨 넣고는 거의 누워서 동영상을 촬영하는 내 스마트폰을 향해 신나게 중계방송을 한다. "시청자 여러분 여긴 북극입니다. 밖은 영하 50도에 태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다행히 생각보다 이글루 안이 따듯합니다." 마치 기자가 현장 리포트 하듯이 한참을 정신없이 떠들며 재밌게 논다.

이글루를 만든 보람이 있었는지 그날 저녁 난 집에서 왕 대접을 받았다. 아이랑 재밌게 놀아준 내가 기특했는지 아내가 저녁으로 닭백숙을 해주는데 얼마나 꿀맛이던지! 양념치킨을 배달시켜 먹자고 우기던 아이도 1시간 넘게 추운 밖에서 떨며 신나게 놀아 피곤했던지 따뜻한 국물이 있는 닭백숙이 생각보다 엄청 맛있단다. 닭백숙에 김치 하나만으로 밥을 두 그릇 가까이씩 먹었다. 그날 밤 얼핏 잠이 드는데 아내가 아이에게 "이렇게 재밌는 시간 같이 보내주신 아빠가 정말 대단하지·" 라는 말을 한다.

'그래 이 맛에 아빠하는 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단잠을 잤다. 원래는 올 겨울이 가기 전에 동해안 쪽에 눈이 많이 쌓이면 그 곳에 가서 큰 이글루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아이랑 아내랑 컵라면을 끓여 먹고 오자고 약속 했었는데, 일단 이렇게라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니 한결 기분이 개운해진다. 언젠가부터 이런 작은 행복들이 참 고맙다. 아이가 맑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도 고맙고, 수영 배우러 재밌게 다니는 것도 고맙고, 좋은 것 사주지 않아도 나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아내도 고맙다. 내가 무슨 복에 이런 행복을 누리나 하는 감사의 마음이 문득문득 든다.

아이에게 항상 공부 잘하는 것보다는 행복하게 살줄 아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또 지금 네 주위만 보지 말고 멀리, 넓게 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외국어 하나 정도를 잘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재밌는 삶이 펼쳐질 수 있는지 상상해 보라는 말로 아이에게 영어공부를 해보라고 살짝 유혹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참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

요즘 결혼을 주저하고 결혼 했더라도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젊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2016년 태어난 신생아 수가 40만 명을 겨우 넘기고, 혼인건수도 사상 처음으로 30만 건을 밑도는 등, 두 지표 모두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소식이 들린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결혼을 늦게 했었기에 이런 소식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덩달아서 아이의 친구들까지 왜 그렇게 예뻐 보이는지, 아이라는 존재가 우리 가정과 사회에 줄 수 있는 이 소중한 행복을 모두가 맛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실의 힘겨움 때문에 이런 행복을 포기하지 않도록 젊은 사람들에게 지금 뭔가 어렵더라도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 내 의지에 따라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야 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행복'을 우리에게 주는 축복된 존재라는 이 믿음이 열매를 맺으려면 이런 희망이란 자양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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