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서거 81주년에 다시 생각한다

2017.02.21 15:18:46

[충북일보]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은 지식인의 본보기다. 사상가이면서 공작인(실천인)이다. 곧은 마음과 바른말이 행동과 일치한다. 파란의 삶은 항일독립 하나로 귀결된다. 한마디로 독보적인 지식인이다.
 
선생은 시대가 낳은 천재다. 한국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역사학자다. 동시에 많은 문학작품을 창작한 작가이기도 하다. 신문과 잡지를 발간한 언론인이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을 일깨운 교육자였다.
 
선생은 독립을 위해 모든 걸 바친 독립 운동가다. 후학양성에도 힘썼다. 1904년 청주시 낭성면 묵정리에 산동학당을 설립하고 신교육운동을 전개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보는 만큼 알 수 있도록 했다.
 
탄핵정국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스럽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혼란의 정도는 더 커지고 있다. 이 시기에 단재 선생을 떠올리는 건 선생의 의기 때문이다. 민족을 위한 오롯한 정신이 지금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재 선생에 대한 재조명을 권유한다. 단재의 혼이 깃든 유적지는 충북에도 많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선생의 역사관을 곱씹어볼 이유가 있다. 우리(我)의 나날은 오늘도 수많은 '우리가 아닌 존재(非我)'들과 갈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우리' 역시 우리 아닌 다른 존재들과 조각조각 분열하기 일쑤다. 그 분열의 정도가 낮을수록 사회통합은 높아진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럴 때 누구나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단재 선생의 본보기가 필요하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주지도 않으면서 사드 배치에는 서슬이 퍼렇다. 일본은 독도에 대한 억지주장을 끝도 없이 한다. 북한은 시도 때도 없이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로 우리를 위협한다. 한 마디로 충돌의 연속이다.
 
선생은 절망의 식민치하에서도 작은 '아'가 더 큰 '아'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와 국가, 민족과 인류의 범위로 '우리'가 확장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현실 상황을 보면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했다. '대한협회회보' 등 언론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했다.
 
주로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민족이 힘쓸 것을 역설했다. 안창호, 이갑 등과 함께 비밀결사 '신민회'도 창립했다.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했다. 그 사이 '독사신론'을 비롯한 많은 역사 관련 서적을 저술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도 참가했다. 이후 '무정부주의동방연맹' 활동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대만으로 가던 중 일제에 체포됐다.
 
이후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 수감돼 1936년 옥사 순국했다.
 
단재 순국 81주기 추모행사가 21일 청주시 낭성면 단재 사당·묘정서 열렸다.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가 주관했다. 이시종 충북지사와 이승훈 청주시장, 유족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선생의 뜻을 기렸다.
 
단재 선생의 정신으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혼란한 상황을 돌파했으면 한다. 지식인들부터 단재 선생 서거 81주년에 단재를 다시 생각해보길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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