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2017.03.05 14:32:20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칼럼니스트

어제가 경칩. 남쪽으로 부터 동매(冬梅)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봄을 노래한 시인이 많지만 다헌(茶軒)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이 백미가 아닌가 싶다. 5백여년 전 다헌이 살던 고향의 봄 풍경인가. 한 폭의 한국화처럼 그려지는 시구가 정겹다.

(전략)..엊그제 겨울이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저녁 햇빛 속에 피어 있고 / 푸른 버들과 아름다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 조물주의 신비스러운 솜씨가 사물마다 굉장하다..(하략)_

다헌의 춘흥은 다음 노래에서 더 그윽하다.

-...이제 막 익은 술 갈건으로 걸러 놓고 / 꽃나무 가지를 꺾어 잔 수를 세면서 먹으리라 / 화창한 바람이 문득 불어서 푸른 시냇물을 건너오니 / 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하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 술동이 안이 비었으면 나에게 아뢰어라.(하략)-

옛 선비들은 동매가 피는 봄날이면 정자를 찾았다. 아직도 먼 산에는 잔설이 녹지 않았다. 때로는 눈발이 흩날려도 발걸음을 억제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노복들에게 술동이와 거문고를 들리고 기별하여 벗들을 불렀다. 동매 꽃잎을 따 술잔에 띄우면 매화향이 진동하는 매화주가 되는 것. 여기에 풍악이 빠지면 되겠는가. 지체가 높은 관리들은 춤과 노래를 잘하는 기생까지 부르는 것이 상례였다.

동매는 봄을 알리지만 무릉도원을 이루는 것은 살구꽃이며 복숭아꽃이다. 고래로 살구꽃은 문사들이 즐겨 애완한 반려화다. '행화춘우강남(杏花春雨江南)'이란 시구는 '살구 꽃피는 강남의 봄날'을 표현한 것으로 이 절구를 사랑한 시인들이 많다.

살구꽃을 아름다운 여인에 비긴 명사들도 있다. '행화를 따러 간다'는 속어는 바로 강남에 가서 미인을 만나고 싶다는 은어였다. 중국에서 서화를 사랑한 이들은 이 시구를 돌에 새겨 인장(印章)으로 삼았으며 그 아취를 즐기고 작품 속에 투영했다.

살구꽃 복숭아꽃이 아름다운 풍경은 충북에 즐비하다. 필자가 가장 아름답게 보아 온 것은 바로 미호천 봄 풍경. 청주시 강내와 세종특별자치시가 자리 잡은 과거 연기 땅 풍경이 좋다. 이곳의 토양이 복숭아나무 생육에 좋아 과수원이 많이 늘어난 때문이다.

괴산군 청천에는 무릉, 도원이란 마을이 있다. 윗마을이 무릉이고 아랫마을이 도원이다. 맑은 청천이 구비 쳐 흐른 이곳은 이름그대로 도원경(桃源景)이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시기를 택해 무릉도원 축제라도 열림직 한데 행정당국에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봄이면 생각나는 문구가 바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이 왔으나 따뜻한 바람을 피부로 느끼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제5공화국시절 JP(김종필 전 총리)가 신군부의 등장으로 헌정질서가 중단되자 암담한 심경을 토로한 것이 유행어가 되었다. 고대 한나라 미인 왕소군이 흉노에 끌려가면서 '오랑캐 땅은 꽃도 없고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심경을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虯)가 노래했는데 이 절구를 인용 한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은 아직도 겨울이다. 봄은 왔지만 따뜻한 봄날이 아닌 것 같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 판결을 앞두고 민의가 두 갈래로 나뉘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양 진영 간 이제는 입에 담지 못할 막말까지 주고받는다.

삼성 이재용부회장의 구속으로 경제계도 얼음장이다.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신경전이 확대되어 한,중 경제협력기반 붕괴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에게 따뜻한 봄날은 언제 찾아올 것인가. 대선에 나서는 이들부터 집권욕 보다는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 하는 노력들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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