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딸의 가출은 분명 이유가 있다

2017.03.06 10:41:15

변혜정

충북도 여성정책관

친구의 딸이 집을 나갔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그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다. 10대 청소년이 아니라 27세 여성이니 가출이라기보다 출가(出家)이다. 그러나 한국의 내 노라 하는 명문외고와 명문대학 출신이며 이제까지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이지 않았던 그녀의 행동은 안타깝게도 '가출'로 인지된다.

그녀는 취업 잘 되는 전공을 살리지 않고 졸업 후 3년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준비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부모에 대한 미안함, 자신에 대한 실망 등으로 힘든 그녀였지만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하지는 않지만 '백수'였다. 그 집 엄마는 엄마대로 딸의 눈치를 살피며 20대에게 물어서는 안 되는 것, 예를 들어 딸의 취업, 결혼, 연애 등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주변 친척들에게 부탁 하곤 했다.

문제는 아빠이다. 가정경제를 책임진다고 새벽 6시에 출근하는 아빠는, 대학교육까지 마친 딸이 졸업 후 어떠한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또 자신에게도 집안일을 하라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준비한 자신과 달리 등록금 등 모든 것을 딸에게 지원했던 아빠의 입장에서 딸을 이해하는 것은 참 힘들었다.

부러운 '딸 바보 아빠'들은 어디에 있는지, 부인, 아들과의 갈등을 넘어 이처럼 부녀간의 갈등 사례가 넘쳐난다. 여성처럼 갱년기를 맞는다는 50대 남성들은 가족/회사 내에서의 인정과 칭찬 부재를 호소한다. 아빠에게 고분고분해야 하는 딸들이 엄마와 편먹고 자신을 공격한다고 분노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경쟁에 밀린 것도 속 쓰린데 가족들마저 나를 이해하지 않는단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만 왕따 인 듯 외롭다.

반면 과거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는 딸들은, 양보하고 타협하는 엄마를 비난하며 더 강하게 아빠/남성들을 공격한다. 평등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배웠는데, 아빠/사회는 들으려고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한다. 밥은 내가 준비했으니 아빠가 설거지를 하라 하면 아빠는 독립을 하라며 동문서답을 한단다. 주변도 여전히 소박하게 살아가는 '여성다움'을 요구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외로움은 독립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지만, 요즘 청년들의 변화하는 의식만큼 경제적 독립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독립은 강요와 부담이 되며 그녀는 모든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성들/50대 이상의 의식은 젊은 사람들만큼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생계를 책임진다고 아이양육을 부인의 몫으로 여겼던 아빠의 무관심의 결과가 이렇게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딸 바보 아빠'들로 요즘 같은 불통, 상실, 갈등의 시대는 안타깝게도 종식되기 어렵다.

국민 10명 중 9명은, 근거 없이 멋대로 생각하는 등 '인지적 오류'에 해당하는 습관이 있다고,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발표했다. 이 연구처럼, 어쩌면 다들 어렵게 견디고 있는데 힘들다고 그녀가 멋대로 가출한 것은 아닌지. 아빠들도 자신도 모르게 인지적 오류를 범하면서 딸들이 제멋대로 한다고 서운해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는 자신의 기준만 옳다고 주장하는 반항아나 꼰대가 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근거 없이 멋대로 생각하는 "인지적 오류"처럼 보이는 그녀의 가출이나 아빠의 꼰대 짓도 분명한 근거가 있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가출은 혹 이 사회에서 여성/청년으로 산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청년들의 새로운 미래를 기다려주지 않는 세대 간 갈등과, 성 불평등을 겪으며 선택한 가출이 진정한 의미의 출가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들의 성찰과 변화도 감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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