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탄금대(彈琴臺)의 때깔

2017.03.26 14:19:02

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주비위 간사

아직은 나목(裸木) 그대로다. 지난 초겨울, 나목 너머로 달천이 허옇게 얼어보였다. 숲에 가렸던 건너 풍경이 드러나 눈에 들어왔었다. 당겨진 듯 가깝게 다가온 얼음 풍경은 착시였다. 겨울 비닐하우스의 허연 지붕이 반짝 빛나며 얼음판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 때부터 탄금대를 찾는 사람들의 옷색이 단풍 떨어진 뒤의 무채색처럼 하나 둘 거무튀튀해졌다. 날이 풀리고 따순 바람에 밀려 겨우내 뜸했던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며 주차장은 언제나 꽉차장이 된다. 그러나 아직 옷색은 무채색 검정 계통이다.

'붕붕!' 관리인의 청소가 시작된다. 그가 밀고가는 길에서는 목이 콱 막힐 정도로 마른 먼지굴을 만든다. 봄비를 기다리는 중일게다. 그러면 나목들도 새닢을 밀어내며 다시 젊어질 준비를 할게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고 했던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의외로 탄금대에 와서, '탄금대가 어디죠·'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탄금대에서 탄금대가 어디냐는 질문은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야트막해도 이곳은 산(山)이기 때문이다.

읍치로부터 서북으로 7리 쯤에 작은 산 하나가 두 강이 합하는 안쪽에 있다. 곧 신라 때 우륵 선인이 금(琴)을 타던 곳이다. 열두층 바위가 있어 이를 일러 탄금대(彈琴臺)라 한다. 그 아래는 양진명소(楊津溟所)라 하고, 사당이 대(臺) 중에 있다. 그 시커먼 물속에 호랑이 머리를 빠뜨려 비를 빌면 효험이 있다. 임진왜란 때에 신립은 여기에 배수진을 쳤고, 패하자 이곳에서 명을 다했다.(自邑治西北七里許。一小山在二江合襟內。卽新羅時于勒仙人彈琴處。有十二層巖。以此名之曰彈琴臺。其下爲楊津溟所。祠在臺中。沈虎頭骨於溟中。祈雨有驗。申砬於壬亂。背水陣於此。兵敗。致命於玆)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충주형승변증설> 중에서 탄금대 부분>

작은 산의 이름은 대문산(大門山) 또는 견문산(犬門山)이라고 한다. 탄금대를 중심으로 한강과 달천이 만난다. 그렇게 이뤄진 한 줄기 강에서 바라보면, 탄금대는 대문이 되거나 커다란 개가 한 마리 웅크린 모양이다. 강길이 주를 이룰 때에 강심(江心)에서 보면 그려지는 형상이다.

여기에 우륵(于勒)이 왔고, 가야금을 탔기에 그곳을 탄금대(彈琴臺)라 한다. 열두층 바위서렁이 있어 '열두대'라고도 부르는 곳이 곧 탄금대다. 대문산, 견문산이라 불리던 그곳이 임진왜란이 지나며 여러 사람의 글에 한결같이 탄금대가 되었다.

댐이 막히며 양진명소도 물에 잠겼다. 옛 기억이 없는 사람은 그저 시퍼런 물일 뿐이다. 그 안에 호랑이 머리도 던졌고,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몸을 던진 곳이기도 하다. 사철 그곳만은 시퍼렇게 멍든 아픈 색이다.

탄금대에 가야금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다양한 소리와 움직임이 있다. 사람들 발길이 적은 아침 시간에는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그득하다. 그 중에 압권은 절집 목탁소리보다 큰 딱따구리의 '딱따르르르~~~' 반복해서 들려오는 여운 깊은 소리다.

어딘가 나무 위에서 시끄러운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부턴가 이 산의 터줏대감이 된 청설모 소리다. 나무타기는 기본에 급할 때는 전선을 타고 공중제비하 듯 질주하는 녀석들의 움직임은 귀여우면서도 앙증맞다.

아침이 지나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이 먼저 청소를 한다. 그리고 이른 손님은 시내 어린이집 친구들이다. 너댓살 아이들이 노오란 어린이집 차에서 내려지면, 그들은 숲으로 간다. 아직 무채색의 숲에 온기를 더하며 오전 한때를 들러가는 아이들이 가장 이른 봄손님이다.

점심 무렵이 되면 관광버스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쏟아낸다. 그러면 그들은 한바퀴 40분 정도 산책을 하며 탄금대를 다 보았다고 돌아간다. 탄금대에 가면, 주차장에서 왼쪽이나 오른쪽 두 길 중에 아무 곳을 택해도 다시 주차장으로 온다. 그러나 굳이 하나를 택하라면 왼쪽이 유리하다. 탄금대, 열두대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이 왼쪽을 택하면 오름계단이요, 오른쪽을 택하면 내림계단이니, 무릎에 무리가 있는 분들은 가급적 왼쪽을 택하라 권하고 싶다.

아직은 무채색의 옷때깔 속에는 봄을 맞은 마음이 담겨 있을게다. 그리고 4월이면 나목이 잎을 피워 싱그러운 풍경이 돌아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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