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화구곡 국악풍류 되살리자

2017.06.11 14:33:14

이재준

칼럼니스트

청주 옥화대도 화양동처럼 구곡(九曲)으로 이뤄진다. 제1경이 청석굴이며 2경이 용소라고 했다. 3경은 천경대, 4경이 옥화대, 5경 금봉, 6경 금관숲, 7경 가마소뿔, 8경 신선봉, 9경이 박대소다.

화양이 곡마다 주자(朱子)의 이상세계를 담았다면 옥화대는 풍류로 의미를 부여 한 것이 다르다. 공교롭게도 두 구곡을 만든 주인공은 같은 스승아래 공부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과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이었다.

이들의 스승은 논산에 살았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우암이 서계보다 한 살 위였으며 이득윤이 아호를 서계라 한 것도 스승의 유풍을 잇기 위함이었을 게다.

일화에는 스승이 두 제자를 가르치면서 서계를 더 총애했다고 한다. 우암이 강직하고 거칠어 불운을 점친 듯 했고, 서계는 조용한 인품이어서 미더워 했던 것인가.

옥화대에는 추월정(秋月亭)과 세심정(洗心亭)등 두개의 정자가 있다. '세심'과 '추월'은 유아한 선비들이 즐겨 시구의 소재로 삼은 시어(詩語). 가을 달빛과 마음을 닦는 다는 뜻이니 선비의 지향이며 가슴에 새긴 자정(自淨)이다.

서계는 학문이 깊었으며 특히 옥화대 풍류를 사랑했다. 거문고의 달인이기도 한 그는 이곳에서 거문고 악보인 '현금동문류기(玄琴東文類記)'를 짓기도 했다. 이 저서는 역대 이름난 악사들의 기록을 담은 것으로 국악사에 빛나는 저서다.

이 책 안에 '오불탄(五不彈)'이란 문구가 등장한다. 즉 '오불탄'이란 다섯 가지 상황에 있을 때 거문고를 타지 않는 다는 불문율을 적은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비가 사납게 내릴 때, 교양 없는 사람을 마주 했을 때, 의관을 갖추지 못했을 때, 저잣거리에 있을 때, 앉을 자리가 적당하지 못할 때는 연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거문고는 선비들이 즐겨 탄 악기였다. 가야금처럼 가냘픈 선율을 만들지 못하지만 둔중하며 고상한 음색이 선비들의 품격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이름 있던 기생들은 가야금보다는 명사들이 좋아했던 거문고를 즐겨 탔다. 기록에 금(琴)이란 표현은 바로 거문고를 지칭한 것이다.

서계는 괴산군수로 재직 중 일 때는 농사에 대한 탁견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임진전쟁 후 고통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농사를 열심히 짓는 것이 난국극복의 지혜라고 강도했다.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이 말세를 헤쳐 나가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런 세상을 맞아 남편은 땅을 갈고 아내는 베를 짜되 벼슬자리에 오르지 말고 농사짓는 데 부지런히 힘씀으로써 스스로 살길을 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는 토정 이지함처럼 예언서의 저자로도 기록에 남아있다. 그가 지은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臧訣)은 '정감록'의 일부로 되어 있다. 이 기록 안에는 충북의 길지로 여러 곳이 열거 됐는데 보은 속리산의 증항(甑項. 시루봉 안부(鞍部), 황간(黃澗)과 영동(永同) 사이, 청주(淸州) 남쪽과 문의(文義) 북쪽, 옥천(沃川)이 주요한 길지라고 천기를 누설한다. 충청남도의 경우에는 진잠(鎭岑), 공주 유구(維鳩)와 마곡(麻谷)을 꼽았다.

청주시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옥화구곡에 관광길이 조성된다. 청주시는 상당구 미원면 운암리에서 계원리 일대 달천변을 따라 형성된 자연경관과 생태·문화 자원을 활용해 관광길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제에 옥화대를 한국 국악의 중흥지로 구상해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삼대 악성 중 두 분인 우륵과 난계 박연의 뒤를 잇는 분이 바로 거문고의 달인 서계 이득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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