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호 시인을 추억하다

2024.09.26 18:04:52

김현정

문학평론가·세명대 교수

지난 8월 31일에 충북 영동문학관에서 열리는, '고 윤중호 시인 20주기 추모문학제'에 다녀왔다. 작년 12월에 개관한 영동문학관을 아직 가보지 못한 터라 가는 길이 설렜다. 충남 금산에서 영동으로 가는, 금강길이 아름다워 그 길을 따라 갔다. 가는 길에 보이는 금강의 물결과 군데군데 보이는 목백일홍꽃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영동문학관에 도착하여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많은 문인들이 보였다. 강당에는 많은 인파로 가득차 있었다.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박수연 평론가의 사회로 고 윤중호 시인 20주기 추모문학제가 진행되었다. 이비단모래 시인, 이주영 시인 등이 준비한 시극(詩劇) '고향, 다시 강가에'가 공연되었다. 마치 윤중호 시인을 보는 듯한 연기가 돋보였다. 이은봉 시인의 추모사와 강성규 부군수의 기념사가 이어졌다. 강병철 시인과 전무용 시인이 추모시 <아직 거기 있는가>와 <청산>을 낭독했다. 윤중호 시인과의 소중한 일화도 곁들였다. 이어 이재무 시인과 이승철 시인이 <아아, 윤중호!>와 <'아름다운 사람의 길'을 살다 간 윤중호 시인>을 통해 윤중호 시인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환기시켰다. 서울 흑석동에 있는 좁은 단칸방에서 동고동락했던 일, 정이 많아 형편이 어려운 시인들을 잘 챙겼던 일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이재무 시인은 "올갱이로 끓인 국물 같은 걸고 진한 입담이 간절히 그리워진다."고 술회하였다.
김경복 평론가는 <고향 의식과 근원 생태주의>라는 제목으로 윤중호 시인의 시세계를 생태적 관점에서 소개했다. 그는 "윤중호의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부정적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한 생태주의 의식과 미학에 서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경민 가수가 윤중호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 다시 강가에>를 멋지게 불렀다. 끝으로 홍경화 유족 대표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윤중호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충남대 장례식장에서였다. 어느 시인의 부친상 조문을 갔다가 여러 문인들과 함께 있는 윤중호 시인을 만난 것이다. 그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는지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맑은 눈이 유난히 빛났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이 있어 먼저 나왔다. 그는 1년 뒤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작고하였다. 추모 1주기에 그의 유고 시집 『고향길』이 발간되었고, 김종철 비평가는 발문에서 그의 시를 "충청도의 밑바닥 언어를 자유롭고 풍부하게 구사하면서 소위 근대화 과정에서 끝없이 소외당해온 사람들의 일상과 그 내면을 깊은 연민과 공감 속에서 애절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묘파하는 뛰어난 시"로 평하였다.
그해에 그의 첫 시집부터 유고시집까지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시를 읽으며 그는 천상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뿐만 아니라 산문집, 동화집을 두루 읽은 뒤 『작가마당』 8호(2005)에 <고향 그리고 금강, '삶의 문학'의 시원(始原) - 윤중호론>을 발표하였다. 이 글에서 "시인 윤중호의 미덕은 힘없고 고통받는 소민들에 대해 끊임없이 애정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는 그에 자주 등장하는 '비탈'에 사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을 통해, 그들과 대화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소시민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긍정성을 발견해 내어 '희망'으로 연결시킨다."라고 쓴 바 있다.
그의 절창 '시(詩)'를 소개한다.

외갓집이 있는 구 장터에서 오 리쯤 떨어진 구미(九美)집 행랑채에서 어린 아우와 접방살이를 하시던 엄니가, 아플 틈도 없이 한 달에 한 켤레씩 신발이 다 해지게 걸어다녔다는 그 막막한 행상길.
입술이 바짝 탄 하루가 터덜터덜 돌아와 잠드는 낮은 집 지붕에는 어정스럽게도 수세미꽃이 노랗게 피었습니다.
강 안개 뒹구는 이른 봄 새벽부터, 그림자도 길도 얼어버린 겨울 그믐밤까지, 끝없이 내빼는 신작로를, 무슨 신명으로 질수심이 걸어서, 이제는 겨울바람에, 홀로 센 머리를 날리는 우리 엄니의 모진 세월.

덧없어, 참 덧없어서 눈물겹게 아름다운 지친 행상길.

-「시」 전문

시인은 '시'를 "덧없어, 참 덧없어서 눈물겹게 아름다운 지친 행상길"로 보고 있다. 그 '행상길'은 막막한 '엄니의 모진세월'의 길이고, 어머니의 눈물의 길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길을 따라 '우리 모두가 돌아가야 할 길'인 '고향 길'로 떠난 것이다. 이 가을 날, 윤중호 시인이 떠난 그 길을, 고향 길을 따라 거닐면서 그의 시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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