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과연 단양 출신인가

2010.03.10 10:18:27

조혁연 대기자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1432~1498)은 역사의 라이벌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은 정도전을 아둔하고 비겁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민부가 아뢰었다. "배가 불룩한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습니다". 정안군은 그 사람이 도전인 줄을 알고 이에 소근 등 4인을 시켜 잡게 하였더니, 도전이 침실 안에 숨어 있는지라, 소근 등이 그를 꾸짖어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러자 도전이 말했다. "청하건대 죽이지 마시오. 예전에 공(公)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 주소서"'.

그러나 단양지역 설화는 정도전의 총명함을 얘기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설화가 구전되고 있다.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었다. 그러던 중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 이후 단양군은 매년 정선군에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자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 내려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

단양군은 이같은 설화 등을 근거로 몇년전 읍내에 동상과 시비를 세웠다. 정도전은 과연 단양 출신일까. 현재 2가지 설로 나뉘고 있다. 많은 기록에는 경북 영주, 또다른 기록에는 단양으로 적혀있다. 따라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도전의 외가가 단양이라는 점이다.

정도전의 어머니는 당시 단양 사족인 '우연'의 딸이었다. 이와 관련, 조선 전기까지는 외가에서 자라고 또 결혼해 처가살이를 하는 것을 하등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따라서 정도전이 단양 도담삼봉 주변에서 태어났는지 여부를 떠나, 유년시절을 보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도전이 단양과 관련돼 있다는 기록은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정도전이 과거 진사시험에 합격한 후 처음 받은 관직이 '충주사록'이라는 벼슬이다. 역시 단양과 가까운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정도전은 친원정책에 반대를 하다 전라도 회진현, 즉 지금의 나주로 유배를 당한 후 다시 그가 살았던 지역으로 유배 장소를 옮기게 된다. 이를 이배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영주와 단양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는 어떤 경우든 단양이 정도전과 관련이 있는 지역임을 의미하고 있다. 이후 정도전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서울 삼각산 밑에 초당을 짓게 되는데, 이때 내걸은 현판이 도담삼봉에서 이름을 빌린 '삼봉재'였다.

우리가 아는 정도전은 정치 외에도 한시도 프로급으로 잘 지었다. 이중에는 단양의 선경을 추억 한 것 같은 한시도 있다. '방김거사야거'(訪金居事野居)라는 한시로 현재 중학교 한문 교과서에 실려 있다.

'가을 구름이 넓고 넓어 온산이 텅 비었네(秋陰漠漠四山空) / 잎은 소리 없이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물들이네(落葉無聲滿地紅) / 말을 개울 다리 위에 세워두고 돌아갈 길을 물으니(立馬溪橋問歸路) / 이 몸이 그림 속에 있는지 알지 못 하네'(不知身在畵圖中)

홍길동 저자 허균은 이 시에 대해 "영롱하고 자유로움이 넉넉히 당나라 시에 들어갈 수준"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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