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의 재활용

2010.06.02 19:08:18

성재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외출할 때 이것저것 많은 것을 챙긴다. 그렇다보니 매번 외출할 때마다 분주하여 무언가 꼭 하나씩 빼놓고 나오거나 하는데, 그래도 반드시 가지고 다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작은 플라스틱 물병이다.

이 물병은 가끔씩 기름을 넣은 후 주유소에서 받거나 물품을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아 생겨난 것들로, 이 물병의 용도는 다름 아닌 아들 녀석의 소변 통이다. 멀리 여행을 가거나 가까운 곳을 놀러 가서도 화장실이 쉽게 눈에 띠지 않을 경우 급할 때 종종 사용한다.

물론 실례를 무릅쓰고 길가에 용변을 보일 생각도 해보았지만, 왠지 아이에게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한쪽 귀퉁이 또는 사람들에게서 잘 보이지 않는 장소로 옮겨가 용변을 보게 한다.

아이가 생리현상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는데, 이 물병의 또 다른 재활용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물병이 나중에 어떻게 재활용이 될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크지도 않아 휴대하기도 편하고 여간 유용한 것이 아니다.

날이 점점 따뜻해지다 보니 요즘 바깥나들이가 잦아지고 있다. 신이 난 아이들의 목소리에 덩달아 들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한데, 가끔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다녀온 후의 감상이 개운치 않을 때도 있다.

며칠 전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왕릉을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홍살문을 지나 좌우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 왕릉 주위로 펼쳐진 푸른 자연을 벗 삼아 걷는 산책길, 한쪽으로 흐르는 맑은 개울소리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순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유와 안식이 아니었을까 한다.

한편 이곳이 경건해야 할 사적지이기에 자칫 지나친 소음과 행동은 큰 무례함이란 생각이 들었으나, 넓은 뜰에서 노니는 아이들의 작은 뜀박질과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아마도 귀여운 손자 녀석들의 재롱으로 이해하실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는데, 안쪽 봉분 옆에 있던 한 가족의 모습이 우리의 눈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초등학생은 됨직한 아이였는데 몇 걸음 앞에 있는 화장실을 나두고 용변을 보고 있었으며, 용변이 끝난 뒤에는 봉분 위로 올라가 계속 뛰어 노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아무런 타이름도 없었고, 뿐만 아니라 가져 온 음식물을 그냥 봉투 담아 봉분 옆에 두고 정문을 빠져나갔다.

이를 본 주위의 사람들 모두 어이가 없었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부모의 그릇된 행동을 보는 그 아이들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조금만 시야를 돌려보면,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문화예절에 소홀한 사람들을 제법 볼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가족들을 위한 행사들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행동을 보여주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생긴다.

어린이와 노약자 등이 있는 곳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다니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거나 큰 소리로 휴대전화를 주고받는 사람, 혼자만 갈 길을 가고자 인파를 밀치며 나서는 사람 등 아직도 남의 시선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영향인지 박물관을 비롯하여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공공예절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져 온 과제물이 버려져 있거나 쓰레기통에 찢겨져 있는 전시 안내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 등을 보면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는 어른들이 옳지 못한 행동을 보여준 결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책임은 분명 어른들 스스로가 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올바른 문화예절은 올바른 문화감상에도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문화재나 작품을 감상하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사람들과 공유되지 않는 느낌과 생각은 자칫 혼자만이 최고라는 독선과 아집에 빠질 수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예절이야 말로 올바른 문화감상의 시작이라 하겠다.

문화예절은 어릴 적부터 스스로 몸에 익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바로 어른들의 몫이라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