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아도 종소리는 퍼지고 있다

2007.04.01 23:29:53

옛날 중국 진(晉)나라에는 범씨라는 왕족 수준의 명문가가 있었다.

그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큰 종이 있었는데 범씨가 다른 연합군에게 망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를 틈타 어떤 도둑이 범씨 집안에 잠입해 그 종을 훔치려 하였다.

그러나 종이 너무 무거워 옮길 수 없자 도둑은 조각 내어 가져가기로 하고 망치로 종을 내리쳤다.

그러자 ‘쨍’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고 도둑은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겁이 나서 얼른 자기 귀를 막았다.

여기서 생긴 고사성어가 ‘자기 귀를 가리고 남의 종을 훔친다’는 엄이도종(掩耳盜鐘)이다.

엄이도령(掩耳盜鈴) 엄이투령(掩耳偸鈴)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진실을 외면한 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갑자기 천년도 더 된 이 고사가 생각나는 것은 지금 세 달 가까이 충북 지역을 뒤 흔들고 있는 복지여성국장 퇴진 논란과 오버랩 되면서이다.

처음에는 능력 시비로 논란이 됐던 김양희 도 복지여성국장의 퇴진문제가 지난 2월부터는 논문표절에 따른 도덕성 및 응모자격이 시비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시민·여성단체들과 지역 일부 교수들까지 퇴진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김 국장은 아무런 말이 없고, 도는 “김 국장을 사퇴시키는 것은 검토도 하지 않았고, 논문 표절여부는 학위를 준 고려대에 입장을 물어 보겠다”며 버텼다.

그러자 얼마 전에는 권위주의 시절에 부당한 권력에 맞서 ‘지식인의 양심’을 보여줘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까지 김 국장 논문에 표절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충북 도청의 측백나무 울타리 밖에서는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 울타리 안에서는 분위기가 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게 여러 사람들에게 감지되고 있다.

“김 국장 논문은 뭐 조금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우리나라 학계 풍토에서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것 아니냐?”

“인사는 도지사의 고유권한인데, 이번에 시민단체에 밀리면 다음에도 또 시비 걸면 골치 아프니까 밀려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명문 사학이라는 고려대학교에서 설마 자기들이 심사하고 학위를 준 논문에 대해 ‘표절이다’라고 자기 부정하는 문구로 회신하겠느냐? 애매모호하게 회신 올 것이고, 그러면 그냥 밀어붙이면 된다”

이 같은 분위기는 얼마 전 충북도가 “김 국장 논문을 제3의 기관에 검증의뢰하지 않을 것이며, 시민단체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도지사 인사권 침해이자 대다수 도민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맞대응한 데서도 감지됐다.

한마디로 김 국장 논문이 표절인지 아닌지의 실체적 진실과 그에 따른 도덕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도지사의 체면이나 시민단체와의 기싸움 등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읽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지속적으로 언론에 오르 내리고, 그 이후 같은 방식으로 공모한 몇몇 고위 자리마저 김 국장 여파에 영향을 받게 되자 일부 도청 직원들 사이에서조차 퇴진론이 나오고 있다.

“선발절차에 문제가 없었으니까 처음에 버틴 것은 그렇다 치지만, 논문표절의혹이 대대적으로 제기된 마당에도 버티고 있는 것은 도지사와 도정에 갈수록 부담만 주는 것”이라는 의견들이 공공연한 비밀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귀를 막고 종을 두드리면 자기 귀에는 안 들릴 지 몰라도 그 소리는 세상 멀리멀리 퍼져나가고 있다.

박 종 천 /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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