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신장 주고 학업도 함께한 소방관 아버지

2007.02.18 11:11:09

8년간 만성신부전증을 앓던 아들에게 기어이 한쪽 신장을 떼어주고 이도 모자라 자식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같은 대학에 입학해 함께 공부했다. ‘왜 이러고 사나‘ 고민도 한때, 어느덧 오는 22일 아들과 한날 졸업식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서울에서 시각디자인 일을 하고 있는 이창민(28·부산 수영구 광안2동) 씨는 짧은 설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지난 15일 일찌감치 부산행 KTX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오는 22일 나란히 경성대를 졸업하는 아버지와 동생에게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이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던 창민 씨는 지난날 가족들이 겪었던 시련과 아픔을 생각하니 명치끝이 아려왔다.

동생 원호(26) 씨는 원래 썩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1996년 중학교 2학년에 진급한 동생은 몸이 자주 붓고 피곤해 했다. 병원 진단 결과 만성신부전증. 그때부터 가족들의 모든 신경은 동생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 술·담배 끊고 단식까지

원호 씨는 꾸준히 식이요법과 한방 치료를 한 덕분에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2001년 경성대 철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입 후 병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1학년 때 휴학을 하고 기약도 없는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동생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장 이식. 아버지 대석(58) 씨가 나섰다. 아버지는 신장 이식을 결심한 후 막내아들에게 ‘건강한 신장을 물려줘야 한다‘며 술 담배마저 하루아침에 끊어 버렸다. 그리고 몸의 탁기를 없앤다며 휴가 때마다 단식을 하곤 했다. 이식수술은 2003년 실시됐다. 다행히 동생의 경과도 좋았다.

어머니 김미련 씨는 "큰아들이 동생에게 신장을 이식시켜 주겠다고 우겼지만 남편이 큰아들 뜻을 누르고 자신의 신장을 줬다. 술 좋아하는 양반이 몸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술도 끊고 기체조를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것으로 막내아들에게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예순을 내다보는 나이에, 그것도 이식 수술을 마치자마자 아들이 다니는 대학 야간부에 입학한 것이다. 건강 때문에 맘껏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경성대 중어중문학과 03학번이다.

아버지의 신장을 받은 원호 씨는 건강을 되찾았고 2003년 복학해 열심히 공부했다. 원호 씨는 "신장을 이식해 주기 위해 단식을 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선 남부럽지 않은 곳에 취직을 해야 하는데….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원호 씨는 부모님께 설 선물로 ‘취직 소식‘을 드리려고 애썼다며 아쉬워했다.

아버지 이 씨는 "평소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한문학과 중문학에 관심이 많아 중어중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시험기간 쪽지를 들고 다니며 외우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왜 이러고 사는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부산 남부소방서 소방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 씨는 주변에서 ‘고집쟁이‘로 소문나 있다. 옳다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그 누가 말려도 듣지 않는다고 한다.

# 자랑할 일도 아니라지만…

취재진의 인터뷰도 극구 사양하다 마지못해 응한 이 씨는 끝끝내 사진 촬영에는 ‘협조‘해주지 않았다. 16일 오전 집으로 찾아갔을 땐 막내아들에게까지 ‘피신령‘을 내린 상태였다. "자랑삼아 한 일도 아니고 자랑할 일도 아니다"는 게 이유다.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흔히 하기 쉬운 말로 ‘아버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정말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합니다.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건강을 지켜낸 동생입니다." 큰아들 창민 씨는 "우리 가족만큼 한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을 가꿔 나가는 집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노컷뉴스(http://www.cbs.co.kr/no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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