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흰 지팡이의 날 - 청주 맹학교 학생 동행취재기

세상으로 나가는 시각장애인의 눈

2011.10.13 20:08:41

☞편집자

오는 15일은 '32회 흰 지팡이의 날'이다. 시각장애인의 권익과 복지증진을 위해 세계맹인연합회가 지난 1980년 제정했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길을 찾고 활동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성취를 나타내는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징이다. 흰 지팡이의 날을 기념해 본보가 청주 맹학교 학생을 만나 하루를 함께했다.

"현우야 일어나, 밥 먹고 학교가야지."

7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박현우(가명·16)군은 가까스로 잠에서 깼지만 여전히 앞은 캄캄하다. 아침 햇살을 보지 못한 지 2년째다.

청주 맹학교 박현우(가명)군이 흰 지팡이로 앞을 살피며 계단을 오르고 있다.

ⓒ김경아기자
어려서부터 백내장과 아토피를 앓아온 현우는 증상이 더 심각했던 아토피를 치료하느라 백내장을 신경 쓰지 못했다. 14살이 되던 해 결국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큰 물체의 형상과 색은 구분할 수 있어 혼자 씻고 밥 먹는 것은 가능했다. 찬 물로 잠을 깨고 밥을 먹은 뒤 집을 나섰다.

흰 지팡이는 현우의 '눈'이다. 집에서 맹학교까지의 거리는 15분. 씩씩한 현우는 엄마에게 짐이 되기 싫어 혼자 등교한다.

"여기서 다섯 발자국 걸으면 첫 번째 랜드마크, 이제 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큰 도로에 접어들었네."

현우는 맹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한 달 동안 등·하교 연습을 했다. 같은 맹인이었던 선생님은 누구보다 현우 마음을 잘 알아줬다. 그렇게 랜드마크를 정하고 흰 지팡이로 벽과 바닥을 두드리며 사고 한 번 없이 7개월째 학교에 등교하고 있다.

학교에 다와가던 찰나, 뒤에 있던 차가 갑자기 현우를 앞질렀다. 놀란 현우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현기증이 나 한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흰 지팡이를 보면 양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흰 지팡이를 몰라 속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오전 9시부터 수업이 시작됐지만 현우는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되는 특기적성활동시간이 기다려진다. 현우가 좋아하는 음악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타, 드럼, 트럼펫은 현우의 활력소다. 힘들고 지칠 때 음악은 현우에게 누구보다 따뜻한 손을 내밀어줬다.

"제 꿈은 CCM(기독교 정신을 담아내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기독교 음악) 작곡가예요, 저 같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밝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음악보다 좋은 건 역시 흰 지팡이. 공부할 때나 밥 먹을 때나 현우의 손엔 흰 지팡이가 들려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의미 없는 지팡이라는 게 현우는 너무 속상하다."흰 지팡이를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흰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맹인들에게 배려해주고 양보해준다면 우리들도 안심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경아기자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