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佛사리, 明 조공품이 되다

2011.11.22 18:18:18

조혁연 대기자

조선은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영의정을 비롯한 삼정승이 응대했다. 반면 명나라는 환관을 조선국의 사신으로 보냈다. 이같은 현상은 양국 관계가 사대(事大)와 조공무역을 바탕으로 맺어졌 때문에 발생했다.

명나라는 사대를 약속한 조선을 국가 실체로 인정해 주는 대신 은(銀), 말(馬), 처녀 등의 조공을 요구했다. 15세기 무렵 조선에 자주 온 명나라 사신으로 황엄(黃儼·?-?)이 있다.

그는 황해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여의고 명나라 국경을 넘어가 잡일을 하면서 학식을 쌓았다. 그는 본래 평민 출신이라 예의범절을 잘 몰랐고, 따라서 조선에 오면 자주 거만하게 굴었다.

'임금이 태평관에 나아가서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환관(宦官) 황엄 등의 행동거지가 무례하므로, 임금이 뜻에 맞지 아니하여 잔치를 재촉해 파하였다.'-<태종실록>

사대를 약속한 조선은 환관출신 사신이 중국으로 돌아갈 때면 임금이 몸소 궁궐 밖까지 나가서 이들을 전송해야 했다. 말 그대로 굴욕으로, 이날은 황엄이 제주도에 있던 구리 불상을 건네받은 후 귀로에 올랐다.

'황엄 등이 동불(銅佛) 3좌를 받들고 경사로 돌아가니, 임금이 반송정(盤松亭)에서 그들을 전송하였다. 우군총제 조면(趙勉)을 보내어 경사로 따라가 예부에 자문을 전하고, 동불을 보내는 뜻을 알리게 하였다.'-<태종실록>

명나라의 조공 요구는 이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불교 사리(舍利)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도 우리고장 충북에는 유명사찰이 많다. 당연히 충북의 사찰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신(朝臣)을 나누어 보내서 사리를 각도 사사(寺社)에 구하였으니, 충청도에는 사재소감 한유문(韓有紋)을, 경상도에는 전 좌랑 하지혼을, 전라도에는 전 정언 김위민을, 강원도에는 종부 부령 이당을 보내었다. 황엄 등이 장차 오기 때문이었다.'-<태종실록>

악명높은 황엄이 이 대목에도 다시 등장한 가운데, 전국적으로 4백여매의 사리가 명나라로 건네졌다.

'이에 한유문은 45매를 얻고, 하지혼은 1백 64매를 얻고, 김위민은 1백 55매를 얻고, 이당은 90매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태종실록> 이것 외에 태조 이성계는 자신이 갖고 있던 사리를 별도로 줬다. 임금의 주머니까지 턴 셈이다.

'태상왕이 황엄과 기원을 청하여 덕수궁에서 잔치하고, 태상왕이 보장해 두었던 사리 3백 3매를 내어 엄에게 주니, 엄이 매우 기뻐하여 머리를 조아려 받고, 단자 2필과 마른 오매(烏梅)·야표(椰瓢) 등 두어 종류를 드리었다.'-<태종실록>

충청도 사리가 우리고장 어느 절에서 공출됐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정황상 속리산 일대의 사찰일 가능성이 높다. 한유문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도 보은지역에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유교적 소양을 지닌 사대부가는 사리를 변변치 않은 것으로 여겼다. 사리는 조개처럼 어느 동물에서도 나온다고 생각했다. 선초 경세가 하륜의 사리에 대한 말이다.

"정기가 쌓인 것입니다. 사람이 정신을 수련하면 다 사리가 있습니다. 바다의 조개도 보주(寶珠)가 있고 뱀도 명월주(明月珠)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서 그런 구슬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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