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보자' 배째라족 급증

차기정부 ‘신불자’ 신용회복 추진한다고 하니…

2008.01.21 21:05:00

“다음달 정부 대책안이 나오면 그때 가서 빚을 처리 할테니 더이상 독촉하지 마세요.”

한 시중은행의 채권추심을 맡고 있는 S모 과장은 최근 1천200만원을 연체중인 K모씨와 통화중 이 같은 뜻밖의 답변을 듣고 감짝 놀랐다.

H 은행 여신관리를 맡고 있는 L모 팀장도 최근 신용대출 400만원을 연체한 채무자로부터 “새 정부에서 이자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라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이에 L팀장은 채무자에게 “채무상환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며 따졌지만 채무자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최근 차기 정부가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에 대한 신용회복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책이 나올 때까지 ‘빚을 안 갚고 버티겠다’는 채무자들이 늘어나고 있어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과 채권추심업체의 채무상환 안내에 대해 상당수 채무자들이 “다음달에 정부대책이 발표된 이후 판단하겠다”며 상담 자체를 기피하는 등 ‘배째라족’이 늘어 나고 있다.
이에 따라 새 정부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팽배해 벌써 ‘모럴 해저드(도적적 해이)’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여신관리팀 관계자는 “제1금융권은 소액 대출이 적은 편이어서 그런지 현재까지 채무상환에 대한 결정적 장애가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며 “일선 지점에서 상환 안내를 하게 되면 상당수 연체자들이 먼저 정부 정책안에 대해 질문을 해오면서 이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한 채권추심회사 관계자는 “갖다 쓴 돈이니 도의적으로 일부라도 갚아야 되지 않겠냐고 말하지만 ‘왜 내느냐’고 반발한다”며 “돈을 안 갚고 기다리면 정부에서 해결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설득할 명분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은행들은 카드 대란이후 정부가 다양한 신용회복 대책을 마련한 상황에서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이번 대책이 ‘버티면 된다’는 식의 학습효과를 줄까 봐 걱정하는 분위기다.

청주지역 H 새마을금고 채권팀장은 “새 정부의 구제 방안에 대해 기대감을 갖는 연체자들이 많은 것 같다”며 “돈을 빌리면 반드시 갚도록 하는 게 신용사회로 가는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청주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신용회복 신청을 하러 왔다가도 먼저 새 정부의 신불자 구제 방안을 믿어도 되나, 아니면 그냥 신청해야 하나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며 “워크아웃, 개인파산, 개인회생 등 현재의 제도를 보완하는 수준에서 정책이 추진돼야지 새롭게 제도를 만들어 연체자들을 구제할 경우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또 다른 연체자를 생성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현재 금융당국은 금융채무불이행자를 우선 지원대상으로 정해 이자는 탕감해주되 원금은 반드시 갚도록 하고, 저신용자의 경우 원금이나 이자 탕감 없이 대출금리만 낮춰주는 두 갈래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동석 기자 dolldoll4@hanmail.net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