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대한 생생한 표현, 청주목사 김자수

2012.06.28 19:45:22

조혁연 대기자

조선전기 복지제도의 하나로 연호미법(煙戶米法)이 있다. 이는 풍년들 때 쌀을 더 거뒀다가 흉년이 들면 다시 나눠주던 제도를 말한다. 규정대로 시행됐으면 매우 이상적인 복지제도로 볼 수 있다.

고려 현종 14년(1023)에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조선 태종 7년(1407)까지 계속 시행됐다. 그러나 연호미법은 그 직후 폐지된다. 탐관오리가 중간에서 농간을 자주 부렸다.

이들은 세미를 과다하게 설정해 놓고 그 차이를 중간에서 빼돌리는 수법으로 착복을 했다. 조선전기 청주목사를 지낸 인물로 김자수(金自粹·?~?)가 있다.

그의 본관은 경주, 호는 상촌(桑村)으로, 김세필이 그의 고손이 된다. 그는 시문이 동문선에 실릴 정도로 문장이 뛰어났다. 그가 우리고장의 사례를 들어 연호미법의 폐지를 주장했다.

'우선 충주·청주의 두 고을로 본다면, 청주는 원래의 전지가 1만 3천 9백 80결(結)인데, 더 늘어난 것이 5천 70결이고, 충주는 원래의 전지가 1만 6천 1백 70결인데, 더 늘어난 것이 4천 5백 70결이니, (…) 이것은 탈루가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이런 때를 당하여 또 연호미(煙戶米)를 거두게 되면, 백성들의 원망이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태종실록>

극심한 가뭄은 충주 달천에만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태조 때 청주목에도 찾아왔다. 당시 청주목사로 있던 인물이 김자수다. 그의 상소문에 조선전기 청주의 가뭄 실태가 비디오를 보듯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금년은 3월부터 비가 오지 않아서 이달까지 이르게 되고, 비록 한 달씩 걸러 한 번 비가 왔으나 흙에 들어감이 두서너 치(寸)에 미치지 못하고, 조금 후에 곧 날씨가 개게 되어 가뭄의 맹렬함이 날마다 더 심하니, 이 까닭으로 보리·밀의 열매가 모두 감손(減損)되었습니다.'-<태조실록>

'치(寸)는 본래 손가락 마디를 상형했으나 지금은 여러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혈연적으로 쓰이면 친족 상호간의 멀고 가까움을 표현한다. 반면 계량단위로 쓰이면 1자의 10분의 1, 즉 3㎝ 정도가 된다.

인용문에서 '비가 와도 두서너 치 흙 속으로 밖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표현은 강수횟수와 강수량이 매우 적음을 의미한다. 그의 상소문이 이어진다.

'지금 굶주린 백성이 슬피 울면서 먹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오히려 그 배를 채워 주지 못하는데, 하물며 가을 밭갈이의 종자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른바 선납(先納)이라는 것은 어디서 징수해 바치게 하겠습니까.'-<태조실록>

김자수가 상소문에서 주장한 것은 천재지변에 따른 조세 감면이었다. 당시 상황이 매우 심각했는지 그는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청한다'라고 상소문을 적었다.

'흉년을 구휼하는 긴요한 사무도 이보다 더 급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군수의 임무는 직책이 임금의 근심을 나누는 데 있는데, 본 바의 백성의 고통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으므로 감히 죽기를 무릅쓰고…'-<태조실록>

실록은 그 뒤를 '도당(都堂)에서 그 의논을 옳게 여겨 임금에게 아뢰어 여러 도(道)의 맥세(麥稅)를 감면해 주었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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