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의 어원은 '미꾸지'

2012.07.03 18:39:50

조혁연 대기자

청주·청원이 통합됐다. 이와 관련, 벌써부터 미호천이 크게 주목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호천의 어원은 어떻게 될까. 생각보다 복잡하고 의외로 '문화 권력'과 관련이 있다.

'미호천'이라는 지명은 '미호'(美湖), 즉 '아름다운 호수'라는 뜻과는 관련이 없다. 미호천이라는 지명은 세종시 동면 예양리 '미꾸지'라는 지명에서 시작됐다. 한국교원대 김순배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이 '미꾸지'는 1864년의 대동여지도에는 한자 '두루 미, '곶 곶' 자를 쓴 '미곶(彌串)으로 표기돼 있다.

이후 1872년의 연기현지도에는 '아름다을 미', '곶 곶', '나루진' 자를 쓴 '미곶진'(美串津)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구한말에 지금의 지명인 '아름다울 미', '호수 호' 자를 쓴 '미호'(美湖)로 변했다.

그러나 '미호'라는 지명은 지금은 세종시(구 충남 연기지역)보다 청원군 강내 지역에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 조선후기 연기군 동면 예양리 일대의 유력한 재지사족은 이른바 '결성張씨' 문중이었다.

익히 알다시피 조선시대 양반가는 유교정신으로 무장된 계층이다. 따라서 결성장씨 가문이 '미꾸지'라는 투박한 지명보다, 일대를 '양인동'(養仁洞·仁을 키우는 동네)이라는 지명을 사용하면서 '미꾸지'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여지도서 충청도 연기군 방리조에도 양인동 지명이 등장, '養仁洞里距官門二十里編戶五十二戶男七十五口女八十三'라고 적혀있다. 직역하면 '양인동리는 읍치에서 20리 떨어져 있는데 52호 가구에 남자 75명 여자 83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도가 된다.

이에 비해 지명 '미호'는 연기군 동면 양인동(지금은 예양리)을 벗어나 청원군 강내면 일대에서 더 위력을 떨치게 된다. 미호중학교, 미호평야, 미호교 등은 이 과정에서 태어난 명칭이다.

지명 미호천이 위력을 떨치자 수변가에 있던 지명들은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미꾸지'의 상하류에는 진목탄, 부탄, 동진 등의 나루터가 존재했다. 이밖에 작천(까치내) 바로 하류는 '망천'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미호천이 '지명의 강자'로 떠오르면서 이들 지명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바로 지명에도 문화 권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미호천의 지명 씨앗이 됐던 '미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민중들 사이에서는 계속 불렸는지 딱 하나가 현존하고 있다.

청원 부강에서 북쪽으로 가고, 연정리에서 서쪽으로 차를 몰면 미호천변에 이르러 삼거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이곳이 '미꾸지 삼거리'(현 세종시 동면 예양리)로, 과거 '미꾸지'로 불렸던 곳이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남쪽의 삼거리는 '예양 삼거리'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양'의 조선후기 인문지명은 '양인동'으로, 바로 '미꾸지'를 주변 다른 지역으로 쫓아냈던 그 지명이다.

미호천 수계의 다른 지역은 '미호'라는 지명으로 평정됐다. 그러나 이곳에서만은 투박한 우리말 지명과 유교식 지명이 아직도 보이지 않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지명도 생물과 같아 흥망과 성쇠의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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