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년전 부부싸움은, 괴산 이문건

2012.07.10 15:12:00

조혁연 대기자

지역 성주이씨 문중이 얼마전 묵재 이문건(李文楗·1494∼1567) 부부의 묘를 경북 고령에서 문중산이 있는 괴산문 문광면 대명리 송면산 자락으로 이장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원피스인 철릭(帖裏), 지석의 일종인 묘지명 등 부인 안동김씨 '돈이'(敦伊·1497-1566)의 유품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명종 때 장조카 이휘가 을사사화에 연루돼 극형당할 상황에 놓였다. 이때 이문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모 신주를 본인 집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는 이때 일기를 이렇게 적었다.

'누님이 새벽에 오셨다. 함께 울었다. 밥과 국과 술잔을 가지고 신주 앞에 차려 놓고서 통곡하였다.'-<1545년 9월 11,12일>

능지처참을 당할 정도의 대역죄를 지었으면 삼촌인 이문건도 중형에 처해졌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문건이 고향유배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을 받았다.

김언묵의 딸인 돈이는 인종의 비인 '인성왕후'와 사촌간이었다. 이문건과 부인 안동김씨의 부부금슬은 전반적으로 좋았으나 한번 대판싸운 내용이 묵재일기에 기록돼 있다.

이문건이 외박을 하고 들어오자 안동김씨 돈이가 이렇게 바가지를 긁는다.

"멀지도 않은 곳에 있으면서 어째서 밤에 기생을 끼고 남의 집에서 잤수. 어찌 이것이 늙은이가 할 짓이란 말이오. 왜 아내가 상심해서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단 말이오."(1552년 11월 21일)

그러자 이문건은 사대부답게 완강하나 한편으로는 처량한 모습도 노출시킨다.

"나도 부드럽게 대답하지 않았다. 서로 격앙되어 어긋장을 놓았으니 오히려 가소롭다. 밤이 되어 비로소 물에 만 밥을 먹고 잤다. (〃 11월 21일)

부인 안동김씨 돈이는 남편 이문건의 바람기를 어떻게 알았을까. 돈이는 여종 '숙지'를 정보원으로 심어놓고 있었다. 같은 날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방금 종 숙지가 말해주었어요. 기생 종대가 자랑하기를 당신이 그 애를 사랑한다고 말했다면서요." 내가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자(…) 저녁 무렵에 추위를 무릅쓰고 아래채로 내려갔는데 붙들지 못했다. 이게 다 계집종들이 잡소리를 듣고서 일러바친 데 따른 변괴다.'

참고로 이문건은 성주에 두 채의 집을 갖고 있었다. 일기만 보면 두 사람의 화해는 대략 1주일 뒤에 이뤄진다. 그러나 부인 돈이는 마음의 상처가 무척 컸던지 또 토라진다. 11월 28일자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낮에 누워서 아내한테 농담을 하였다. "기생 가운데 잘 생긴 아이가 없다오" 그러자 아내가 노하면서 말하였다. "종대가 또 생각나서 그런 것이지요" 하면서 아래채로 내려가 버렸다. 가히 질투 잘하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서두에 안동김씨 묘지명을 언급한 바 있다. 남편이 아내의 묘지명을 직접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이문건은 1년 먼저 죽은 아내를 위해 직접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비록 70나이를 누렸으나 / 깊은 병에 항상 내 마음이 타들어갔다 /…/오호라 훌륭한 부인이여 / 어찌 나보다 먼저 갔는가 / 영원히 혼과 몸을 간직해서 / 만년 동안을 여기에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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