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구황절요'와 시각장애인 안위

2012.07.17 16:04:34

조혁연 대기자

전회에 중종대의 충주목사 안위(安瑋·1491∼1563)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사실 그는 신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었다. 실록은 그가 한 쪽 눈이 멀었다고 적었다.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었다. 간원(諫院)이 아뢰기를, "예조 좌랑 안위(安瑋)는 한쪽 눈이 멀었는데 본조(本曹)는 조정의 예모(禮貌)를 맡는 곳이고 또 객인(客人)을 접대할 때에 보기에 민망하니 가소서." 하니…'-<중종실록>

중종은 이에 대해 "다른 직임이라면 오히려 할 수 있거니와 객인이 보는 곳에는 예모에 합당하지 않다. 아뢴 대로 갈라"고 이직을 하명한다.

그러나 그는 신체 장애를 극복하고 구황행정을 잘 펼쳐 조선시대 특별 진급의 일종인 '가자'(加資)를 받았다.

"충주목사 안위는 관직에 부지런하고 검소하였고 일 처리가 자세하고 익숙하여 진휼하는 일이면 다 강구하여 있는 힘을 다해 조치해서 때맞춰 구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내의 백성들이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중종실록>

안위는 구휼행정만 잘 펼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손수 구황음식에 대한 책을 저술했다. 바로 '충주구황절요'다. 이 책은 1541년(중종 36) 안위가 충주목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기관(記官) 홍윤창(洪胤昌)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내용은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먼저 안위는 절식(節食)을 강조했다. 그는 음식을 아끼는 요령으로는 죽(粥)먹기, 음식에 풀을 섞어 먹는 방법, 일일삼식 중 일식을 건너뛰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종교적인 것과 관련된 내용도 들어있다. 그는 귀신에 제사를 지내거나 불공을 드리기 위하여 음식을 장만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식량 부족을 이유로 유리걸식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부작용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부의 구휼 외에 흉년에 대비한 식량 비축을 근본적인 구황 대책으로 여겼다. 때문에 구황용 장(醬)은 식량으로서 뿐만 아니라 부종(浮腫·붓는 증상)이 나는 것을 예방하는데 매우 유효하다고 기술했다.

안위는 또 아사에 직면한 자나 동상에 걸린 자를 다루는 요령, 진황전(陳荒田·묵은 땅)을 개간하는 방법, 흉년에 임하는 부자의 자세 등을 이 책에서 언급했다.

이밖에 그는 흉년이 찾아왔을 때 농우(農牛)와 노비·도둑 등에 대한 대책 등 치안적인 내용까지 다뤘다. 이처럼 안위는 구황에 대한 정책적인 제시뿐만 아니라 풍속도 바로 잡으려 했다. 때문에 충주구황절요는 여러 면에서 조선시대 여타 구황서와 대비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충주구황절요는 원본(1541)이 아닌 필사본(1794)이다. 필사본은 광복후 문화재 반환사업 일환으로 일본에서 들여와 현재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신체 장애가 있던 안위는 승진을 거듭, 드디어 명종대에 우리고장 충청도(당시 청홍도) 관찰사가 됐다. 사관(史官)은 충청감사가 된 안위를 이렇게 적었다.

'안위의 사람됨은 마음가짐이 중후했고 일에 임해서는 신중했으며, 이치(吏治)에 뛰어났다. 일찍이 3주(州)의 목민관이 되었었는데 모두 명망과 치적이 있었다.'-<명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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