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저지'에서 '고도리'까지, 조선시대 노비

2012.09.23 16:28:00

조혁연 대기자

전회에 이문건의 젖어멈 노비를 언급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노비들의 명칭과 역할은 의외로 세분화돼 있었다. 먼저 미산(未産) 노비, 잉임(孕任) 노비, 복중태(腹中胎) 노비 등의 명칭을 꼽을 수 있다.

미산노비는 출산하지 않은 여종, 잉임노비는 임신한 여종, 복중 태노비 역시 뱃속에 아이를 갖고 있는 여종을 의미하고 있다. 태아는 종모법에 따라 성별에 관계없이 숙명적으로 노비가 돼야 했다.

이밖에 육아와 관련된 노비로는 '업저지'가 있다. 업저지는 주인집의 젖먹이 아이를 업어주며 하루종일 함께 놀아주는 어린 종을 일컬었다. 노비의 자식들이 주로 이 일을 맡았다.

계집종 중에는 성장해서도 결혼한 주인 아씨를 따라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계집종은 '교전비'라고 불렀다. 시댁 예의범절을 조언하고 말동무가 되는 것이 교전비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러나 교전비는 대체로 얼굴이 곱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칫 남편과 눈이 맞아 첩으로 들어앉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장례까지도 노비의 힘을 빌렸다. 이른바 '곡비'(哭婢)가 존재했다.

곡비는 그 지역 양반이 죽었을 때 빈소는 물론 무덤까지 따라가 대신 슬피 울던 노비를 말한다. 동네에서는 이들의 곡소리가 얼마나 크고 애절한가에 따라 상가의 위세를 판단했다.

괴산 이문건의 묵재일기에는 '향복이'라는 여종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녀에게는 청소, 옷수선, 상전 머리빗질, 약시중 등의 역할이 주어져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어린 계집종이었고, 이 때문에 간통사건의 당사자가 된다.

이문건은 이런 향복이를 자기 곁에 오지 못하게 하고 하가(下家·집이 두 채였음)로 내려보낸다. 묵재일기의 행간을 보면, 여기에는 이문건의 질투심도 분명히 엿보이고 있다.

향복이는 4년 후 다른 종과 결혼을 해 붉은 반점이 있는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문건은 끝내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父不知'(부부지·아버지를 모름)로 남겨둔다. 이문건에게 여종의 아버지는 큰 관심이 아니다. 향복이가 낳은 아이는 자기재산이 되는 반면 그녀의 남편은 자기 재산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영화 '망나니' 중에서.

지금까지는 주로 사노(私奴)를 설명했다. 관노(官奴) 중에도 이색적인 노비가 적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사또 옆에 붙어 시중드는 노비를 '시노'(侍노)라고 불렀다. 이 시노는 사또의 위세를 믿고 자주 농간을 부렸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시노로서 농간하는 자는 혹 관청에 송사하러 온 백성이 있으면 수령은 말이 없는데 제가 나서서 꾸짖고(…), 물건을 구입할 때 관청을 빙자하여 헐값으로 빼앗고…'.

관노 중에는 사형 집행을 강요당했던 노비도 있었다. 망나니는 많이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범죄자 중 사형을 면해주는 대신 감옥에 가둬 놓고, 사형이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 칼춤을 추게 했다.

이들이 망나니로, 한자로는 '죄인의 목을 벤다'고 해서 '회자수'(會+刀子手)라고 불렀다. 이밖에 '고도리'라는 관노가 존재했다. 조선시대 포도청에 딸리어 죄인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을 '자리개미'라고 불렀다. 이 자리개미를 하던 남자 관노가 바로 '고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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