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대지국사탑비와 문의박씨 박의중

2013.01.10 15:44:33

전회에 우리고장 문의(청원)가 관향인 고려말 대신 박의중(朴宜中·1337~1403)이 억정사 대지국사탑비(보물 제 16호·충주 엄정면 괴정리 )의 글을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존하는 사료를 보면 대지국사(大智國師)는 고려후기 우리고장 충주지역에서 활동했다.

그는 속명이 한찬영(韓粲英)으로, 본관은 청주(淸州)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복직장에 재직했던 한적이고 어머니는 청주곽씨이다. 부모 모두 청주를 관향으로 가졌다는 점이 우리고장과의 밀착도를 더 높이고 있다.

그는 1341년 삼각산 중흥사에서 태고화상 보우를 은사로 삭발하고 계를 받았다. 이후 승과에 응시한 23세 전까지 보우에게 5년, 정혜국사에게 3년, 수자화상에게 1년간 공부를 했다. 보우에게서 법을 받았고, 정혜국사로부터는 수행을 배웠으며, 수자화상을 통해서 참선의 진정한 의미와 방법을 배웠다.

전북 김제 상동면의 박의중 신도비.

그는 1353년 승과에 장원 급제, 대흥사의 주지가 되면서 사판승(事判僧)의 길로 접어든다. 그 결과, 왕명에 의해 석남사, 월남사, 신광사, 운문사 등 중요한 절의 주지를 맡아 선법을 설하고, 1372년 공민왕으로부터 '정지원명무애국일대선사(淨智圓明無石+疑國一大禪師)'라는 호와 함께 금란가사, 바리때, 묘필(妙筆) 등을 하사받았다.

1374년에는 우왕으로부터 가지사 주지로 임명받고 '무애현오국일도대선사(無石+疑玄悟國一都大禪師)'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가지사는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 있는 사찰로, 9산문의 하나다. 1383년에는 왕사가 되어 '원응존자(圓應尊者)'라는 칭호를 하사받았고 이어 우리고장 충주 억정사의 주지로 임명됐다.

7년간의 억정사 주지를 지낸 후 1390년 6월 마지막 게송을 읊은 후 세수 63세(법랍 49세)로 입적했다. 그는 입적하기 직전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다. 게송(揭頌)은 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漢詩)의 한 형식을 말한다.

'바로 내가 보고 들은 것은 보고 들은 것이 아니어서 / 그 소리와 색을 그대에게 가히 드러내 보여줄 수가 없구나 / 그 가운데서 만약 세상이 온통 무사(無事)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 체와 용이 나누어지든 나누어지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다.'-<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서두에서 문의박씨 시조인 박의중이 충주 엄정의 대지국사탑비의 문장을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의중 특유의 문체를 이 비문을 통해 접할 수 있다. 비문은 핵심적인 내용을 간결하면서 압축적으로 구사했다.

'국사는 의표가 괴위(체격이 장대하고 훤칠함)하고 기국이 넓고 깊었으며 성품은 총민하고 행동은 준엄하였으며 낯빛은 엄격하고 언어는 온화하였다. 입에는 좋고 나쁨이 없었으며 모습에는 기쁘고 성남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지난 악행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비록 원수라 하더라고 회포에 남겨두지 않았으니 어떤 사람들은 이 때문에 훌륭하게 여겼다.'-< 억정사 대지국사탑비 내용 중 일부>

문장은 '무릇 유명한 가람을 아홉 번이나 거쳤고 세 번이나 법호를 더하였으며, 두 임금에서 函丈(함장·스승)의 예를 받았고 2대에서 빙호를 내려주는 은총을 받았다. 이것은 그 덕행이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으므로 비석에 새길 만하다'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문의박씨 인구는 2천년 기준으로 1천2백여 가구에 총 3천5백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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