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의 적기를 논하다, 산림경제 홍만선

2013.04.09 15:45:27

조혁연 대기자

지구 온난화로 식목 적기를 더 앞당겨야 한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의외로 조선시대에는 일년 중 양력 2월 하순~3월을 식목을 적기로 봤다.

조선후기 실학자로 '산림경제'를 지는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있다. 그는 우리고장 충주 연원역 찰방과 단양군수를 역임했다. 농서인 산림경제는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식목의 적기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식목은 정월(正月)이 상시(上時)이고, 2월이 중시(中時)며, 3월이 하시(下時)다'-<홍만선의 '산림경제'> 쉽게 설명하면, '식목은 음력 정월이 가장 좋은 때이고, 2월이 그 다음이며, 3월이 그 중 처지는 때가 된다' 정도가 된다.

물론 이때의 정월은 음력 한 달을 얘기하는 것으로, 지금의 양력으로 치면 3월 초순 정도가 될 수 있다. 그는 또 나무를 심은 후의 관리 요령에 대해서도 지금과 부합되는 내용을 서술했다. 이런 내용이 나온다.

'모든 나무의 뿌리는 편안하게 뻗기를 원하고, 배토(培土)는 평평하기를 바라며, 토양(土壤)은 원래 서 있던 곳과 같기를 원하고, 구덩이는 단단히 메워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을 '모종은 어린 자식 다루듯 하되, 놓아두면 천성대로 저절로 자란다'라고 적었다. 지금도 식목 요령을 설명할 때 "현장에서 파낸 흙으로 다시 구덩이를 채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료에는 우리고장에서도 나무심기 행사가 대규모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적지 않다. 조선 중중 때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은 조선전기 옥천현감을 역임했던 '양구주'(梁九疇)라는 인물을 평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직전에 청풍군사를 역임하는 등 우리고장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태종 때에 고을 일을 맡아보았는데, 법을 시행함에 공정하고 부지런하였으며, 백성들에게 임함에 간명하고 엄정하였다. 서산(西山)에 잣나무 3백여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도 관청에서 그 이익에 힘입고 있다.'

이 대목은 옥천 묘목문화의 시원(始原)으로 삼을만한 문장이나 아직 표지석 하나 세워져 있지않다. 보은지역과 관련된 사료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영조 때 보은군수를 역임한 '김홍득'이라는 인물은 '서원향약'을 본딴 '보은향약'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그 향약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모든 사람이 봄 가을에 대추, 밤, 닥나무, 옻나무 등을 각 사람이 30주를 그가 사는 곳 앞이나 혹은 밭두둑 혹은 부모묘지 좌우의 빈곳에 심도록 한다.' 이때도 보은대추가 유명했는지, 역시 맨 먼저 언급되고 있다.

방풍림이 있는 주덕읍 제내리 마을 모습이다.

충주지역에도 식목문화과 관련된 소중한 실화가 현존하고 있다.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들머리에는 정확히 107년 된 인공 마을숲이 존재한다. 이 마을은 뒷산은 있으나 앞이 너무 트여 한겨울 찬바람 막기가 쉽지 않은 지형이다.

그러자 1906년 당시 풍덕마을 주민들은 집집마다 보리 한 말씩을 거둬 마을 입구의 땅을 산 후, 그곳에 방풍림 용도의 인공 버드나무 숲을 조성했다. 현재도 매년 숲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관은 노인회장이 맡고, 필요한 경비는 방품림계의 기금에서 충당한다. 이시종 도지사의 고량이 인근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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