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숙제로 빛을 보다, 청주박 불비상

2013.04.30 16:33:37

조혁연 대기자

국립청주박물관이 '돌에 염원을 새기다'를 주제로 한 '백제 불비상' 특별전을 갖고 있다. 이름이 다소 독특한 불비상은 한자로는 '佛碑像'이라고 쓴다. 말 그대로 비석 모양의 석부재 전후좌우 4개 면에 부처상을 조각했다는 뜻이다.

불비상은 조각이 미려할 뿐만 아니라 명문, 즉 글자가 새겨져 사료적 가치가 더욱 높다. 그런 불비상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불비상은 언제, 어떤 사연이 계기로 발견됐을까. 지난 2011년에 작고한 황수영 박사는 생전에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의 최고 권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지난 1960년 자신이 가르치던 동국대학 제자들에게 "아무거나 좋으니까 탁본을 떠오라"는 학기말 숙제를 낸다. 그러자 당시 충남 연기가 고향이던 이재옥이라는 학생이 전의면 비암사의 불교조각 작품을 탁본을 제출했다.

국립청주박물관의 유일한 국보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사료적 가치가 엄청난 것을 직감한 황 교수는 곧바로 비암사로 내려와 불비상 조각품 2점을 더 발견하게 된다. 국보 제 106호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이런 사연 끝에 발견됐다. 현재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에는 앞서 언급한 3점 외에 연기지역 또 다른 사찰인 연화사와 서광암에서 발견된 4개의 불비상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들 불비상은 충남 연기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됐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연기파 불상'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7개의 연기파 불상 중 1점은 국립청주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굳이 연고를 따진다면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어야 맞으나, 청주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국립청주박물관은 故 곽응종 옹이 땅을 기증하고 고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로 지난 1987년 개관을 했다. 그러나 막상 개관을 하려고 보니까 청주박물관에는 국보유물이 1점도 없었다. 따라서 이웃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국보 제106호인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비상'을 빌려오게 된다. 현재도 국립청주박물관의 유일한 국보이지만 '대여중인 상태'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연기파 불비상'은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이들 8개의 불비상 중 일부에는 '戒酉(계유)'. '己丑(기축)' 등의 명문이 각각 보이고 있다. 이를 서기력으로 환산하면 계유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후 13년이 지난 673년, 즉 문무왕 13년 때가 된다. 반면 '기축'은 이보다 다소 늦은 서기 689년(신문왕 9)이 된다.

따라서 백제가 망한 후 지금의 세종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불비상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남아 있는 명문을 부분적으로 해석한 결과, '백제의 국왕, 대신과 그리고 칠세부모의 영혼이 서방정토에서 왕생할 것을 아미타불에 빈다'라는 내용이 쓰여져 있다.

그리고 연기지역을 통일한 '신라국왕, 대신들도 이땅의 정토에서 아미타불의 가호를 받길 빈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불비상의 명문이 대체로 "백제유민들이 나라가 망한 울분을 달래면서 한편으로는 '신라'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라고 알려져 있다. 백제의 관등인 '달솔(達率)'과 신라관등인 '대사(大舍)'가 함께 등장하는 점도 또 다른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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