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인보 포로명단, 3호 것이 아니다

2013.12.10 17:35:57

조혁연 대기자

얼마전 지역 한 일간지가 '자유한인보 제 3호' 발견을 보도했다. 자유한인보는 태평양 전쟁 때 미군에게 포로로 잡힌 우리나라 사람들 3천명 가량이 하와이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제작한 주간 소식지를 말한다.

한국인 포로들은 1년 6개월의 포로생활을 하면서 제 7호까지 소식지를 만들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제 3호 복사본이고 마지막 호인 제 7호는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종전과 함께 종간된 '자유한인보'에는 미국 하와이 포로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일 등이 기록돼 있다. 가령 제 3호에는 당시 함께 포로생활을 하던 이탈리아 포로들과 축구시합을 했고, 그 결과 3대 5로 졌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밖에 귀국하면 어떤 나라를 건설한 것인가, 또 미군에 대한 고마움 등의 내용이 실려있으나 이중 후자는 다소 의외다. 자신을 포로로 잡고 있는 적국에 대해 고마움을 갖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정서상 맞지 않는다. 당시 미군은 한국 포로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張甲善(장갑선)' 씨는 자유 한인보 제 3호가 아닌, 제 7호 부록 명단에 실려 있다.

그런 한국인 포로 3천여명은 8명이 한 조가 돼 천막에 수용돼 있었다. 즉 당시 하와이 지역에는 한인 포로를 수용한 천막이 3백70여동 가량 들어서 있던 셈이다.

난민들의 천막생활은 종종 외신을 통해 접할 수 있다. 하와이의 당시 한인 포로들도 그런 모습으로 짧지 않은 수용소 생활을 했다.

이들은 낮에는 하와이 해변가 청소, 포로 수용소 주방일, 페인트 칠, 꽃밭가꾸기 등의 일을 하고 하루 8센트의 노임을 받은 것으로 관련 논문에 실려 있다.

이번에 발견된 자유 한인보 제 3호는 1945년 하반기에 제작됐다. 이것이 최근 지역 모일간지 자료실에서 발견된 데는 나름의 곡절이 있다. 당시 하와이 포로 수용자의 한 명으로 징병전 경북 영주가 고향인 '張甲善'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귀국하면서 자유한인보를 가져왔다.

이후 그는 이를 우리고장 보은의 집에 보관하다, 1991년 모 일간지에 제보했고, 그 과정에서 복사본이 해당 신문사 자료실에 남겨지게 됐다. 그리고 그 신문사는 최근 자료 정리를 하다 복사본을 발견했다.

이와 관련, 해당 신문은 당시 포로들의 명단도 이번에 함께 발견됐다는 식으로 보도했으나 이것의 사실 관계는 약간 다르다. 이번에 발견된 포로 명단은 제 3호가 아닌 제 7호의 부록에 붙어 있는 명단이다.

그리고 그 명단은 20년 전에 이미 처음 공개된 것이고 현재 독립기념관도 갖고 있다. 해당 신문사는 제 3호 '자유한인보'와 제 7호 부록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하와이의 한국 포로들은 '자유한인보' 발간하면서 유독 7호에 포로 수용자 전체 명단을 수록한 데는 역시 나름의 배경이 있다. 자유한인보 제 7호가 제작되기 직전 한인 포로들에게 '1년 6개월 가량의 하와이 포로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자 당시 3천여명의 포로들은 '고국에 돌아가서도 인연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명단을 제 7호 부록에 싣게 된다. 포로 수용자 명단이 제 3호가 아닌, 제 7호에 실린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제 7호에는 충북이 고향인 사람의 이름도 상당수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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