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짓는 남자의 첩이 되길 원하다

2014.02.04 13:26:18

조혁연 대기자

우리고장 옥천 출신의 조선시대 여류시인인 이옥봉( 李玉峰·?-?)은 어머니가 천인이었지만 그녀의 몸에는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이봉(李逢, 1526~?)은 양녕대군의 고손자로, 호는 자운(子雲)이다.

그녀는 이런 혈통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지녔고, 그같은 심리는 한시로 나타났다. 그녀 대표작의 하나로 '영월도중'(寧越道中)이 있다. 글자 그대로 강원도 영월을 가는 도중에 지은 한시다.

'닷새는 강을 끼고 사흘은 산을 넘으며(五日長干三日越) / 슬픈 노래 부르다 노릉의 구름에 끊어졌네(哀詞吟斷魯陵雲) / 이 몸 또한 왕손의 딸이니(妾身亦是王孫女) / 이곳의 두견새 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此地鵑聲不忍聞).'-<가림세고 부록>

인용한 내용 중에 '노릉'과 '이몸 또한'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노릉은 노산군(魯山君) 즉 단종(端宗)의 능을 의미하고, '이몸 또한'은 자신도 그런 핏줄이라는 점을 강한 자의식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녀의 결혼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내용이 각종 자료에 공통적으로 서술돼 있다. 먼저 그녀는 자신의 시적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역시 문재(文才)를 갖춘 남성를 따르고자 했다.

그 결과, 조원이라는 인물의 문재가 대단함을 알고 그의 소실이 되기를 자원, 결혼에 이르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원(趙瑗·1544~1595)은 실존인물로, 1564년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여 1575년 정언이 되었고 이후 이조좌랑, 삼척부사를 거쳐 1593년 승지에 이르렀다.

이옥봉의 한시가 실린 '가림세고' 부록이다.

그는 율곡 이이와 '과거 동기'로 율곡이 생원과 1등을 차지할 때 그는 진사과의 수석을 차지했다. '생원과 진사를 명정전 뜰에서 방방(放榜)하였다. 생원 제1등은 이이(李珥)이고 진사 제1등은 조원(趙瑗)이었다.'-<명종실록 19년 7월 28일자>

앞의 두 내용은 4백여년전 한 여인의 결혼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듯이 표현하고 있다. 조원의 현손(증손자의 아들) 중에는 조정만(趙正萬·1656-1739)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집안 선대의 글을 모아 '가림세고(嘉林世稿)'라는 문집을 만들었고, 이옥봉의 한시는 이 문집의 부록(가칭 옥봉집)에 실려 있다. 여기에 옥봉의 결혼에 얽힌 이야기가 기술돼 있다.

'나의 고조부 운강공(조원의 호)에게는 소실 이씨(이옥봉 지칭)가 있었는데 왕실의 먼 후손이다. 이씨는 그 재주가 자부하여 가볍게 남에게 허락하지 않고 빛나는 재주와 문학적 명망이 한 세상에서 높이 뛰어난 남자를 구하여 시집을 가고자 했다.'-<가림세고 부록>

이옥봉의 아버지 이봉은 딸의 이런 마음을 조원에게 전하나 "대장부다운 행동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거부를 당한다. 그러자 이봉은 조원의 장인인 신암 이상서(李尙書)에게 중간다리를 놓게 해 승락을 얻어냈다.

"운강공이 '나이가 적고 명망 있는 관리가 어찌 번거롭게 첩을 두겠습니다' 하고 답했다. 신암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런 일에 거절을 하는 것은 대장부다운 행동이 아닐세' 하고 드디어 날을 잡아 데려오게…"-<가림세고 부록>

그러나 둘은 백년해로를 하지는 못했다. 시(詩) 때문에 만난 인연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 시 때문에 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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