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괴산군수가 되신 운강공께'를 짓다

2014.02.06 15:54:38

조혁연대기자

우리고장 옥천 출신의 여류시인인 이옥봉(李玉峰·?-?)을 소실(첩)로 맞은 조원(趙瑗·1544-1595)은 수재형 인물이었다. 그는 명종대에 진사시에 장원 급제하였고, 선조대에는 별시 문과에도 급제하였다. 이 부분은 전회에 밝힌 바 있다.

그는 시문에도 능해 빼어난 한시를 많이 남겼다. 그가 지은 시중에 '별원즉사(別院卽事)'가 있다. 봄날의 서정이 잔물결이는 물가를 지켜보듯,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묘사돼 있다.

'정원의 실바람에 제비 나직이 날고(庭院微風燕影低) / 배꽃 핀 방초 언덕엔 새들이 지저귀네(梨花芳··鳥啼) / 담 모퉁이에 지는 해 의당 늦은 봄이라(墻頭落日宜春晩) / 행원 서쪽에 붉은 꽃 요란히도 나부끼리(·亂飄紅杏苑西)'-<청정관전서>

조선후기 실학작의 한 명으로 이덕무가 있고, 그는 '청정관전서'를 저술했다. 그는 이 문집에서 "이 시는 마치 만당(晩唐)의 시체(詩體)와 같다"고 평했다.

생소한 표현인 '만당'은 중국 당(唐) 나라의 말년의 시를 초당·성당·중당·만당 등 4시기로 구분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중 만당은 문종 이후 당말에 이르는 시기를 일컫는다. 조원의 시가 당나라 말기의 한시를 닮았다는 뜻이다.

조원의 시중 위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한시가 또 있다. '강행(江行)'이라는 한시로, '봄 생각에 젖은 미인 눈썹에 시름겨워'라는 표현은 감각적인 시상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옥봉 시 '몽혼'은 서화의 주제로도 자주 등장한다.

'강가의 어느 집 벽옥 난간에(江上誰家碧玉欄) / 봄 생각에 젖은 미인 눈썹에 시름겨워(美人春恨鎖眉端) / 머리 숙여 선골(仙骨) 낭군과 속삭이려는데(低頭欲共仙郞語) / 가벼운 배는 무정하게 여울을 떠나가네.(無賴輕舟下急湍)-<청정관전서>

조선 사림파는 오랜 쟁 끝에 명종대에 이르러 훈구파를 물리치고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사림파는 선조대에 이르러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됐다. 조원이 활동하던 시기는 그런 분위기가 막 움트던 시기였다.

조원이 동서인 중 어느 당에 속했는지는 뚜렷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의 인용문을 보면 서인에 속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이가 말하기를, "지금 만일 조원(趙瑗)을 탄핵한다면 이것은 좌상(박순 지칭)을 겹문 안에 가두는 격이다" 하고, 상차하여 양사를 모두 체직시키고 조원만 나와서 근무하게 하니, 효원(김효원 지칭)의 제배들이 마음속으로 불쾌하게 생각하였으며 허엽은 더욱 불평하였다.'-<연려실기술>

인용문을 보면 이이와 조원, 그리고 김효원과 허엽이 같은 편이다. 익히 알다시피 이이는 서인의 영수였고, 김효원은 동인의 비조였다. 조원은 서인과 동인이 갈등하는 과정에서 좌천됐고, 그래서 부임한 곳이 우리고장 괴산이다. 이옥봉이 그를 따라 괴산에까지 왔는지 '괴산군수가 되신 운강공께'라는 한시를 남겼다. 운강공은 조원을 지칭한다.

'낙양의 재자 가의(洛陽賈才子) / 거짓으로 미쳤으니 참으로 안타깝다(佯狂眞可嗟)/ 임금 곁을 떠나버리면(一辭天上後)/ 누가 장사땅 그를 생각할까(誰念在長沙).'

이 한시는 중국 고사를 인용한 시로, '임금 곁을 떠나버리면 / 누가 장사땅 그를 생각할까'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괴산군수로 좌천된 조원의 처지를 비유하고 그에 따른 불만을 감정이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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