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감사 윤현, "조선 제1의 호조판서"

2014.02.20 14:37:20

조혁연 대기자

조선시대 호조(戶曹)는 조세, 부역, 인구 등을 담당했던 관서로, 그 수장은 지금의 경제장관에 해당하는 호조판서(정2품)다. 각종 문헌은 조선시대 최고의 호조판서로 충청도관찰사도 역임한 윤현(尹鉉·1514-1578)을 자주 기록했다.

'윤현이 비용을 아끼고 보관해 두는 것을 견고하게 하였으며 각사에 오래 묵어 썩고 깨진 물건들을 모두 장부에 기록하여, 창고에 저장해 두었었는데 뒤에는 모두 쓸 데가 있었다. 일찍이 사옹원에서 깨진 사기 그릇을 거두어다가 저장하니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웃었다.'-<선조수정실록 11년 7월 1일자>

이 인용문의 악센트는 뒤에 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를 비웃었지만, 그 비아냥은 곧 탄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후에 궁성을 수리하게 되자 단청 물감을 담을 그릇이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 그 깨진 사기 그릇을 내어다 나누어 주니 사용하기에 넉넉하고 비용도 적게 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진나라 도간(陶侃)이 나무 톱밥을 사용하게 했던 것보다도 훌륭한 일이라고 하였다.'-<〃>

중국 동진의 무장인 도간은 배를 만들다 남은 나무 톱밥과 대나무 조각을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지만 곧 요긴하게 사용됐다. 나무 톱밥은 눈이와 진창이 된 길을 유용하게 덮었다.

또 당시 도간의 병사들은 병선을 만들고 있었으나 대나무 못이 부족했다. 이때 대나무 조각은 못 대용으로 훌륭하게 사용됐다. 여기서 생겨난 고사성어가 그 유명한 '죽두목설'(竹頭木屑)이다.

윤현의 행동도 죽두목설 고사에 못지 않은 면이 있다. 다음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 유몽인이 지은 어유야담에 함께 수록돼 있는 내용으로, 죽두목설을 마치 조선으로 옮겨 놓은 모습이다.

'윤현은 이재에 능하여 호조 판서가 되어 무릇 떨어진 자리나 청연포(靑緣布)까지도 모두 창고 속에 간수해 두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그 뒤에 떨어진 자리는 조지서(造紙署)에 보내어 맷돌에 갈아 종이를 만드니 종이 품질이 썩 좋았고, 청연포는 예조에 보내서 야인들 옷의 숫단추를 만드니 가늘어서 베 온폭을 조각으로 베지 않아도 모두 쓰기에 적합하였으며…'-<연려실기술>

한시 제목 '遊梵宇三學寺'(선)이 보인다.나머지 내용은 뒷장.

이처럼 윤현은 물자를 절약해서 쓰고 백성을 사랑한 절용애민(節用愛民) 정신을 몸소 실천한 조선시대 몇 안 되는 관료였다. 그러나 그는 경제 외에 시작 능력도 매우 빼어났다.

전회에 이옥봉의 '몽혼'(夢魂)이 윤현의 '제증청주인'(題贈淸州人)을 모방했거나 창작의 힌트를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삼학사 절간에 머무르며'라는 뜻을 지닌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유범우삼학사'(遊梵宇三學寺)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돌에 부딛힌 물방울 봄여울을 울리고(亂石鳴春溜) / 구름 차츰 걷히면서 산모습 드러나네(孤雲·多岑) / 솔 사립문 닫아건 체 중들은 자고(松扉僧閑久) / 숲 사이 작은 길로 손님이 오네(林逕客來深)'-<국간집>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등덩굴 오래 되어 담에 얽히고(藤老過墻蔓) / 종소리 절 밖으로 올려 퍼지네(鐘淸出寺音) / 밤이 돼 절간 자못 고요한데(夜來山賴寂) / 염불소리 세상 잡념 흩어놓는구나(禪話散塵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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