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오르며 호국영령의 넋을 기린다

2014.06.03 17:31:24

47,000,000명! 3,360,000명! 작년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발표한 전국 21개 국립공원을 찾은 사람들의 수와 그중에서도 관동의 명산 설악산을 찾은 탐방객수이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국립공원을 찾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 중 설악산이 6·25동란 전에는 북한 땅이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알까·

설악산은 21개 국립공원 중 내가 사는 청주지역에서 가장 멀리 있는 편이다. 대진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지리산도 4시간이 채 걸리지 않건만 설악산에서 돌아오려면 상습정체구간이 늘 있어서 보통 5시간이상 걸린다. 이렇게 먼 거리이지만 난 설악을 매년 자주 찾고 찾을 때마다 설악이 내게 주는 의미에 온몸에 전율이 돋는다. 설악산을 처음 찾을 때는 그랬다.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오거나 설악산으로 수학여행 와서 학생들을 인솔할 때는 야유회 정도의 나들이코스였다. 기껏해야 소공원을 경유하여 흔들바위에서 바위를 흔들어보거나 비선대나 비룡폭포까지 걸어가 보았고 권금성 케이블카로 설악의 윗자락을 조금은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천불동계곡으로 대청봉을 오르면서 설악에 오르기 시작, 산악회를 따라다니며 차츰 설악에 매료되어갔다. 무박으로 새벽녘에 오르기도 하고 더위와 싸우며 기를 쓰고 능선을 오르내렸고, 한겨울 추위와 싸우며 대청봉에 오르고 엄청난 눈 속에 파묻히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설악의 매력 포인트로 바위를 든다. 능선마다의 침봉과 절벽, 크고 작은 폭포, 수많은 소(沼)와 담(潭) 등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넋을 빼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저리 생겼을까· 조물주가 아무리 빚어도 저리 빚진 못하리라. 하지만 육산의 매력도 많다. 계곡마다 숨겨진 숲도 짙고 소청봉, 중청봉, 대청봉을 오르면서 느끼는 둔중한 능선은 바위가 빚어내는 뾰쪽한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그 울창한 숲속과 고개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고갯마루를 다시 오를 수 있도록 해준다. 허나 산이라면 단풍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단풍의 최고는 내장산 단풍이라지만 설악산 단풍! 그중에서도 천개 불상의 얼굴을 가졌다는 천불동 계곡의 단풍은 가을 내내 발 디딜 틈도 없이 아예 등산객에 밀려 오도 가도 못할 정도다. 엊그제 눈앞에 펼쳐진 신록의 천하가 단풍이 들었다고 상상해 보라. 아니란다. 설악은 말 그대로 설악(雪嶽)이란다. 예부터 내려오는 이름대로 눈 덮인 설악이야말로 설악이란다. 눈 덮인 겨울 산을 가본 사람이라면 눈이 갖는 매력이 강렬한 미소를 가진 여인의 유혹보다 더하다. 사람의 키보다 더 많이 쌓인 눈으로 소청봉에서 희운각으로 내려오는 길은 온데 간 데 없고 겨울스포츠 봅슬레이 코스로 허 딴 곳을 짚었다간 빠져나오지도 못한다.  하지만 난 설악에 갈 때 다른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군대 생활할 적 양구에서 신남, 원통, 인제 방면으로 야간 산악행군과 100Km 행군을 하면서 국립공원 설악산 장수대를 지척에 두고도 한 번도 그것을 접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쪽 지역은 6·25동란 때 치열한 전투 끝에 수복한 값진 산이기에 한없이 고마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이 우리를 둘로 나누어놓았던 38선과 6·25동란 후 휴전선을 비교해보라. 평야지대가 많아 부대이동이 비교적 쉬웠던 경기도 황해도 지역은 멀리서 온 외국인 부대가 주둔하다보니, 38선 이남인 개성도 북한 땅이 되었다. 하지만 산악지대가 많았던 강원도 지역은 우리 젊은이들이 무거운 군 장비를 지고 험한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찾으려 한 몸 불살랐기에 우리가 지금 화천, 양구, 인제 그리고 설악산국립공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남의 나라 땅에 와서 목숨을 불사른 외국 참전용사들의 희생은 우리 젊은이 희생만큼이나 값지고 숭고하다.

난 명산 설악산을 찾을 때마다 6·25동란 중 설악산 산악전투에서 중공군을 맞아 용감히 싸우다 순국장병들, 군번 없이 참전하여 산화한 학도결사대 용사들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뛰고 내 팔뚝에 전율이 돋아난다. 아! 이 분들이 아니었으면 어이 이 아름다운 설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으랴! 조국의 이름으로 최후까지 싸우다 꽃잎처럼 산화한 수많은 호국영령들이여! 임들이 이 산천에 선혈을 뿌린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연간 400만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을 찾아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악을 찾는 이들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한 목숨 바친 젊은이들의 넋에 마땅히 고개 숙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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