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충북도립대학 교수

싹쓸바람 너구리가 지나가고 남은 것은 본격적인 여름 더위이다. 그야말로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구절처럼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光欲大叫)의 심정이 된다. 해서 방학이 필요하다. 대학은 벌써 방학에 들어갔고, 초 중 고등학교도 대부분 이번 주부터 방학이 시작된다고 한다. 예전에 방학(放學)은 배움(學)을 잠시 놓는(放) 것으로, 교실(강의실)을 떠나 친척집을 찾아가고, 부모님의 일을 돕거나, 의기투합한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하면서 교과서외의 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혼자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 집에 놀러 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산으로 들판으로 뛰어다니고, 냇가에 들어가 멱을 감으며 놀았다. 산토끼나 꿩을 잡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고, 고추밭에 들어가 고추도 따보고 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런데 제일 곤혹스러운 것은 식사 때와 화장실 가는 문제였다. 차려진 밥상에 달랑 밥 한 그릇 냉수 한 대접, 그리고 고추장과 풋고추. 정말 그게 다였다. 우리 집도 가난했지만, 집에서 먹던 밥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처음 한 두 번은 안 먹고 버텼지만 배고픈 데 장사 있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저씨가 드시는 것처럼 따라 해 보니 그것은 또 다른 세계요, 별미였다.

화장실 가는 문제는 더 끔찍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마을에서 밤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정말 무서웠고, 참을 수 없을 때는 아줌마를 깨워 같이 가곤 하였다. 옛날 재래식 화장실은 깊이(·)를 알 수 없고, 종이조차 없이 볏짚으로 마무리를 하여야 했다. 그러면서 아줌마가 가버릴까 봐 조마조마했고, 화장실 틈 사이로 비추는 달빛을 보며 졸린 눈을 비비곤 하였다. 이제 성인이 되어 가끔 그 마을을 들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유년시절 그 추억이 시나브로 그리워진다.

요즘 아이들의 방학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방학이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 삶의 방식이 친척집에 놀러가는 것은 폐를 끼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아예 보내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나아가 방학은 학기 중에 밀린 공부를 보충해야 한다며 주요과목 선행학습하기에 여념이 없다. 내 아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재능과 소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그저 공부만을 강요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다고 학기보다 오히려 더 바쁘다. 웬만한 스펙으론 명함도 못 내미니 극한의 체험을 쌓으려한다. 중요한 것은 체험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배우는 경험과 지혜가 소중한 것임을 알고,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제 정말 방학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학부모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각박한 현실의 경쟁을 잠시 접어두고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자.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외여행도 아니고 고급스런 휴가도 필요 없다. 온 가족이 모처럼 손잡고 가까운 곳에 가서 모깃불을 피워 놓고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워보면서 가족애를 다지는 것도 좋은 휴가요, 힐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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