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천태만상

2014.07.27 17:45:33

김애중

옥산신문 편집위원

모로코와 스페인, 포르투갈은 요즘 뜨는 여행지의 나라다. 11박 12일 일정으로 그 곳을 다녀왔다.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두바이를 거쳐 첫 번째 목적지인 모로코까지 갔다. 열아홉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일행 20명은 장시간 비행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모로코의 이국적인 모습에 두 눈을 반짝였다.

영화와 노래로 유명한 모로코의 대표 도시 카사블랑카가 시작점이다. 본격적인 관광이다. 안내를 맡은 현지 교포 가이드는 쉬지 않고 설명한다. 도시와 나라의 역사적 배경부터 현재 상황까지 진지하다.

일행들의 여행 스타일은 여기서부터 나온다. 우선 '사진파'가 등장한다. 가이드의 설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재빨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 듯했다.

'범생이파'도 있다. 최대한 가이드와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맞춘다. 설명도 열심히 듣는다. 메모도 하며 가끔 질문까지 한다. 가이드를 신나게 하는 분들이다. '잘난체파'도 있다. 가이드 설명을 앞질러 말하기 일쑤다.

가이드를 난감하게 하는 장본인들이다. 더 아는 체를 하며 가이드의 입을 막아버리고 한다. 대개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분들이다. 자신의 여행담을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어 참지 못하는 유형이다.

우리 일행은 주로 스페인에선 성당과 박물관, 미술관 등을 방문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많다. '얌체파'는 이때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뙤약볕을 견디며 줄을 서 기다린다. 그런데 ㅤㅇㅑㅍ체파는 재빨리 근처 그늘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나서 줄이 움직인다 싶으면 얼른 일행 틈으로 섞여 들어온다. 물론 화 나는 일이다. 그래도 일행들은 어쩌지 못한다.

'농담파'의 진가는 이 때 발휘된다. 자칫 분위기가 어색해지려 하면 재치 있는 말 한마디로 웃음을 터뜨리게 해준다. 얄미운 얌체들의 구세주라고 할 수 있다. 때론 속 끓이는 사람들의 마음치료사 같기도 하다.

스페인 역사에 대한 가이드 설명은 처음에는 장황한 것 같다. 하지만 계속 듣다보면 재미있다. 장시간 버스로 이동할 땐 정말 긴요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타국 땅의 낯선 풍경을 보면서 한 시간 이상 가이드 강의를 듣는 것은 호사다.

가이드의 힘을 빼는 이들이 있다. '호기심파'다. 뜬금없이 길가에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냐, 왜 이리 많으냐, 저건 무슨 풀이냐, 저 열매는 어디에 쓰이냐 등등 질문을 퍼붓는다. 그래도 노련한 가이드의 말이 우리를 웃게 한다.

세세한 걸 물어보는 손님들에게는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스페인말로 대답한다고 한다. 맞는지 틀리는지 손님이 알 수 없으니 그렇게 한다고 한다. 물론 다른 팀의 경우라고 하지만 실상은 우리를 지칭하는 말처럼 들린다.

낯선 나라에선 음식이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우리 일행들도 날이 갈수록 힘들어 했다. 그래도 '주류파'들은 잘 견디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기운을 찾고 생기를 찾았다.

미처 술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도 동냥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흥을 냈다. 다른 일행들도 함께 즐거운 분위기를 찾게 됐다.

여행분위기를 살리는 분들은 또 있다. 이른바 '패션파'다. 아침에 나설 때 마다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주변이 다 환해진다. 모두들 부지런해서 그런지 고단한 여정에도 차림이 말끔하다. 아침마다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여행하는 모습들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마음이 하나였다. 일행 모두 시간을 잘 지켜서 한 번도 늦게 출발한 적이 없었다. 조금씩 양보하며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게 좋은 여행을 선물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두 다 똑같을 수는 없다. 여행은 갖가지 재료들이 들어가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내는 비빔밥과 같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조화롭고 살맛나는 생활을 창조해내는 귀한 경험이다. 여행이 삶의 활력소인 까닭을 알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이른바 '범생이파'에 '패션파'를 곁들인 멋진 스타일의 여행자를 꿈꾸기 시작한다. '주류파' 친구와 함께라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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