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마음

2014.07.28 14:05:41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매일 같은 내용의 비디오를 반복해서 돌려 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예전 캠코더에 아이들 유아시절을 담아 놓았던 8㎜ 테이프를 DVD와 USB로 변환한 것이다. 특히 고1짜리 작은아들은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학교 갔다 오면 휴식을 취하듯 켜보곤 한다.

이사할 때 아이들의 어린 시절 비디오테이프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아내는 혼자서 끙끙 앓으며 나 몰래 그동안 집안을 샅샅이 찾았던가 보았다. 그러다 극적으로 발견한 10여개의 작은 비디오테이프들에 어찌나 감격하던지, 아내는 우편으로 부쳐도 될 것을 굳이 대전까지 오가며 그 테이프를 요즘의 기기에 맞게 변환하였다. 그 테이프에 이제는 거의 청년이 다 되어가는 아이들 아기 때의 생생한 영상이 담겼다고 생각하니 오가는 버스 안에서도 마음이 설렜다고 한다.

의외였던 것은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처음 한두 번만 신기해하다 금방 무관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테이프에 담긴 모습들은 아기들이 그저 천진하게 움직이며 노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극적인 사건이나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찌 보면 지루하기조차 하였다. 간혹 재미있는 장면이라면 서너 살 된 형이 기어 다니거나 보행기 탄 동생을 못살게 구는 정도였다. 내용 중에서 가장 새로운 게 있다면 유치원 재롱잔치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열광하였다. 살이 포동포동 올라 올록볼록한 손목을 재미있어하고, 기저귀차고 뒤뚱거리는 짧은 다리에도 폭소를 터뜨렸다.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아기들의 단순 동작,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 등 그저 아이들은 별것 아닌 자신들의 모습에도 흥미로워했다. 나 또한 처음에는 이십 년 전 아이들의 아기 때 모습이 신기해서 같이 앉아 많이 보았지만 차츰 시들해져갔다.

내가 같이 텔레비전 DVD로 안 보니까 작은 아이는 제 컴퓨터에서 걸음마를 막 배우는 자신의 돌 무렵 영상을 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저게 그리도 재미있을까?'

그러면서 녀석의 눈길을 따라 무심코 그 영상을 쫓다보다 문득 가슴에 내려앉는 생각이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줄기차게 쫓고 있는, 영상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보고 있는 거였다. 그저 기어 다닐 뿐이거나, 장난감 만지작거리거나, 걸음마 배우고 있는 별것 아닌 행동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중요한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부모의 시선을 느꼈던 것이다. 그 눈길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무조건적으로 받았던 어린 시절의 사랑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면서 아이의 눈빛은 점점 순화되고 있었다. 영상 속 우리 부부는 아이의 작은 손짓 하나에도 무슨 계시나 내린 것처럼 열띤 반응을 보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옹알이 하나도 똑똑히 들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처음 말을 배우며 단어를 익힐 때는 끈기 있게 낱말을 같이 반복해 되풀이하며 들어주고 있었다.

그 지난 시절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잊혀졌던 사랑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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