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아름답다

2014.07.28 14:03:49

박선예

충북도 문화관광해설사·수필가

거듭된 무더위와 높은 불쾌지수로 심신이 엉망이다. 머리도 아프고 몸이 천근만근이라 매사에 시큰둥하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밖으로 나섰다. 훅 달려드는 열기에 숨이 막히고 쨍쨍 내리쏟는 햇빛으로 온 세상이 눈부시다. 눈이라도 제대로 떠볼 양으로 손바닥으로 햇볕을 막았다.

"희야 엄마야, 오랜만이다"

반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십 여 년을 알고 지낸 이웃사촌 언니였다. 덥석 손을 잡고 우선 나무 그늘을 찾아 숨을 돌린 다음 근황을 물었다. 이 더운 날, 그녀는 밥을 하러 간단다.

작년 이맘때쯤, 이웃의 한분이 천금 같은 아들을 잃었다. 누구나 가슴 아픈 일인 줄 알기 때문에 위로의 말조차 건네기 쉽지 않았다. 그 분은 삶의 의욕조차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훌훌 털고 일어나더니 끼니를 굶는 어르신들을 위해 점심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분은 평생 재래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였다. 지금까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았는데 앞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며 수 십 년 동안 했던 장사를 깨끗이 접고 그 자리에서 손수 밥을 지어 소외된 어르신들께 점심식사를 대접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웃 몇 명이 일손을 보태게 되었단다.

이렇게 더운 날,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이웃언니는 돈으로는 못 돕지만 삼십년 동안 해온 밥 짓는 일만은 선수이니깐 써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한다. 어르신들이 친부모 같아서 하루라도 빠지면 궁금하고 미안해 이제는 다른 일은 뒤로 미루고 우선 먼저 이 일을 하고 있단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낯익은 이웃언니들이 셋으로 늘어났다. 그녀들은 오랜만에 만났으니 손이라도 잡아 달라고 투정부리는 나를 두고 폭염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렇게 더운 날, 뜨거운 불앞으로 달려가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자식을 잃은 아픔을 감당하기도 벅찰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 분, 함께 동참한 이웃의 언니들, 팔다 남은 야채며 찬거리를 가져다주는 상인들, 그 사실을 알고 슬그머니 푼돈이라도 놓고 가는 보통사람들…. 모두가 장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난 아직도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나와 똑 같은 사람들이라고 여겼던 이웃의 언니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권력이나 돈에 가깝지 않고 사치나 허영과도 먼, 그냥 보통사람들이라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예쁘고 큰 사람들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남을 돕겠다는 생각과 소외된 이웃에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찜통 같은 날, 밥하러 가는 그녀들이 정말 아름답다.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는 그녀들! 그녀들이야말로 진정 이세상의 빛이고 소금이었다. 무언지 모를 부끄러움과 부러움에 그녀들이 사라진 모퉁이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여전히 폭염이 내리쬐고 있다. 뜨겁다. 하지만 뜨겁다는 생각조차 미안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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