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인데 이 정도는 뭘

2014.08.11 13:25:46

박선예

충북도 문화관광해설사·수필가

며칠 전이다. 아침부터 수은주가 삼십 도에 육박하고 불쾌지수가 무려 팔십을 넘어섰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태양은 이글거렸다. 불볕더위는 최고조에 달해 그늘을 벗어나면 잠시도 견디기 힘든 날이었다. 나무 그늘 밑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연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물가로 가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싶어 호숫가로 가기로 작정하였다. 따가운 폭염을 피하기 위해 면장갑을 끼고 모자를 쓴 다음, 양산까지 받쳐 들고 호숫가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덥죠? 시원한 물 한잔 드릴까요?"

불쾌지수가 최고로 높다는 날과 걸맞지 않는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사소리 따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뙤약볕 밑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있는 어느 아주머니였다. 구리 빛이다 못해 까만 얼굴의 여인이 유난히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의 이마에는 빨간색의 수건이 질끈 동여매어 있었다. 흰색의 반팔 셔츠 아래 보이는 까만 팔뚝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무릎아래 드러난 그녀의 종아리는 이미 벌겋게 익어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햇볕에 그을릴까봐 면장갑과 모자 그리고 양산으로 중무장한 내 모습이 갑자기 우스꽝스러웠다. 얼른 양산을 접고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이런 뙤약볕 아래 일하기 힘드시죠?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는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미안한 마음에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은 이렇게 찌는 날에 그것도 폭염아래에서 일하는 그녀가 매우 걱정이 되었다.

"아유, 괜찮습니다. 여름인데 이 정도는 뭘. 얼마 만에 잡은 직장인데요. 공공 근로하는 사람이 직장이라고 하니 좀 우습지요? 두 달 계약이지만 전 평생직장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해 일하거든요. 아무리 더워도 일거리만 있다면 행복하지요"

순간, 온몸이 화끈거렸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녀는 반년 전쯤 서울을 떠나 충주로 왔다한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지만 일자리 찾기가 수월하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하였다한다. 이제야 공공근로 일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반문을 하였다.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두 달 후에도 다시 일거리를 얻게 되기를 바랄뿐이라며 밝고 씩씩하게 말하였다. 겉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녀는 참으로 빛이 났다. 당당하고 솔직하였다.

어찌 그녀라고 올여름의 더위가 힘들지 않겠는가! 가족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더위와 싸우고 있는 중 일 것이다. 덥다고 투정하기가 부끄럽다. 그녀를 생각하면 덥다는 말조차 사치이기 때문이다.

그날이후 "덥지요"하고 누가 인사를 건네면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조금 따끈합니다. 여름인데 이 정도는 뭘!"

오늘도 여전히 햇볕이 강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녀는 폭염아래에 있을 터인데. 소나기라도 한줄기 내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난히 하얀 이가 돋보이던 그녀! 그녀의 밝은 웃음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여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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