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가세요

2008.05.21 21:28:24

어린 시절에 ‘마실 간다’는 표현을 자주 쓴 것으로 기억된다. 한 여름 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옆집으로 놀러가거나, 고구마나 감자를 한 소쿠리 챙겨 이웃마을로 놀러갈 때 즐겨 사용했던 충청도 사투리다.

변변치 못한 교통수단에 전화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엄마 아빠 손잡고 마실가는 것은 문화소통과 정보습득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웃집의 가정사를 샅샅이 듣고 올수 있으며, 옆 동네의 다양한 소식과 이웃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어디 이 뿐인가. 인간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정감을 나누는데도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었다. 편지는 단순한 소식을 전달하는데 그치지만 마실문화는 가슴으로, 눈으로, 온 몸으로 대화를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최적의 소통 수단이었다.

우주여행이 현실화 되고 교통과 통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요즘에도 마실가는 문화가 있을까.

나는 단연코 ‘있다’라고 주장한다. 바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마실가는 것이다. 아래 위집으로, 아래 윗동네로 마실가던 시대가 아니라 이웃나라로 마실가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을 보라. 지도 한 장만 들고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과 문화를 맛본다. 현장에서 만나는 낮선 사람과의 따뜻한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살아있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한다.

특히 무한경쟁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문화를 통해 하나가 되고 소통의 물꼬를 만들며 상생의 노력을 하는 것은 우리의 마실가는 문화가 한층 성숙되고 업그레이드된 형태일 것이다.

세계의 작가들이 한곳에 모여 전시회를 열고 워크샵을 개최하며 다양한 교류사업을 펼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학술회의 심포지엄 업무교류 등 각양각색의 문화로 생성되며 창조되고 있다.

나는 최근 캐나다로 마실 다녀왔다. 캐나다 정부의 초청으로 10일간 방문 했는데 공예라는 인류 공통어를 찾아 순례하는 내게는 캐나다의 거대함, 캐나다의 풍부함, 캐나다의 다양함, 캐나다의 평온함을 느낄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공예인들이 소박한 꿈을 일구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이들의 미래를 더욱 밝고 희망 넘치게 만들려고 애쓰는 공예조합 관계자들의 열정을 만날때마다 가슴이 뛰고 에너지가 샘솟는 자신을 발견했다.

캐나다 일정 중 마지막 방문지는 섬유작가인 김정인씨와 도예가 스티브 해인맨 부부의 공방이었다.

토론토 외곽의 한적한 마을, 150년 된 고택에서 이들 부부는 문화사랑에 흠뻑 젖어 있었다. 도예가와 섬유작가, 한국인과 캐나다인, 동양과 서양의 만남은 공예를 통해 하나가 되고 사랑이 되며 꿈이 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상처가 왜 없었겠는가. 낮선 땅에서, 낮선 사람과의 인연을 맺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상처와 인내, 그리고 고통과 지혜가 수없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말하기 쉽고 노래하기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며 어느 시인은 외쳤다. 쉬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함께 하는 수많은 시간을 참고 배려하며 존중하였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들 부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기 가방속에 숨겨 두었던 도자기 한 점을 꺼냈다. 단양방곡도예촌 서영기씨의 백자를 방문 기념으로, 다녀간 흔적으로 남겨 두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누가 외쳤던가. 새삼스럽게 우리는 넓고 크고 다양하며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런 만큼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길도 많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 외국으로 마실가는 것은 또 다른 삶의 충전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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