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세방낙조에서 바라본 일몰.
ⓒ김태훈기자
'국가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말이란 무엇인가, 잊고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이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질문들이 한숨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뜬구름이 되어 버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질문은 지상의 것입니다.'
-김행숙의 '질문들' 中에서
지난 봄, 우리들은 '세월호'라는 배 위에서 몇 달을 통곡(痛哭)하며 살았습니다.
4월 16일, 그 이전으로 안타까이 시간을 되돌려보며 눈을 뜨면 여전히 환한 봄의 햇살이 비현실적 악몽으로 비쳐드는 것에 울었습니다.
천지의 뭇 생명들이 화사한 숨결로 깨어나는 그 시간, 봄 소풍에 나선 어린 생명들을 오히려 깊은 잠에 빠지게 한 우리의 무력함에 몸부림쳤습니다.
그렇게 견뎌온 시간, 벌써 2014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에 서있습니다.
'세월'이라는 이름 그대로 '흘러가는 시간'처럼 우리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마음에서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나 살자고, 비워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팽목항을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바다에 노란 리본들만이 고사리 손처럼 파르르 떨며 우리를 맞았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이건 바다가 아녀. 무덤이야, 무덤."
꽃 같고 푸른 나무 같던 아이들만 250명을 삼킨 바다였습니다.
상상하면,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의 공포가 내 마음을 한꺼번에 덮쳐 숨쉬기 힘들었습니다.
서로 입혀주던 주황색 구명조끼가 결국 수의(壽衣)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다 무덤 속 아이들은 서로 잡은 손을 풀지 않았고, 학생증을 손 안에 꼭 그러쥐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교복에 같은 색 명찰을 달고 함께 맞이할 제주도 아름다운 풍광을 같이 꿈꾸던 아이들을, 한꺼번에 똑같이 어둔 바다 밑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다시 바다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잠시 쉬고 있는 신원 확인소는 죽은 자보다 산 자의 몸부림이 더 참혹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지옥도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감히 손 댈 수 없는 날선 분노와 비통한 가슴으로 마음의 독방에 스스로를 가둔 부모들에게 사람들은 달려갔습니다.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함께 새우던 자원봉사자들, 지친 사람들이 떠날 즈음 그들과 침식을 같이 하러 달려온 가수, 안산에 치유 공간 '이웃'을 연 정신과전문의, 한 달 이상 거의 매일 바지선에서 밤을 새우다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던 한 해군 대령…그는 "군인이 아픈 건 국가에 대한 불충"이라고 했다지요.
섣부른 위로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아픔을 함께 한 그들의 진정한 마음 몇 자락을 앳된 초록의 아이들 영전에 바쳐봅니다.
바다는 원래 인류 태초의 생명이 발아된 공간이 아니던가요.
세월호에서 잠든 아이들은 양수로 가득 찬 어머니 자궁 같은 곳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라고…그리하여 또 다른 생명으로 태동될 것이라고 애써 믿고 싶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삶을 맞바꿀 듯이, 떠난 아이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의 파장이, 이 세상에 새롭고 아름다운 생명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