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마을 노부부의 '연말풍경'

청주 문의 진사골 김이웅·김희순씨 부부

2014.12.30 19:42:48

27일 김이웅 할아버지와 김희순 할머니가 손을 잡고 진사골에서 걷고 있다.

ⓒ김동수기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농번기가 지나고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의 겨울.

눈이 내리면 세상과 단절돼 섬으로 불리는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후곡리 진사골에 단둘이 겨울을 나는 노부부가 있다.

지난 27일 청주시내에서 1시간 넘게 차를 몰아 도착한 이곳에 김이웅(71) 할아버지와 김희순(63) 할머니가 겨울 준비에 한창이었다.

"눈이 왔으면 못 들어 왔을 건데. 그래도 어찌 잘 찾아왔네."

지난 1980년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민들이 산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은 후곡리 진사골에는 결혼 45년차의 노부부가 살고 있다.

지난 27일 김희순 할머니가 키질을 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마을과 함께 분교까지 사라져 5남 2녀를 어린 시절부터 대전으로 유학을 보낸 노부부의 겨울.

이곳은 아직도 1980년대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산에서 나무를 해 아궁이에 불을 때고 고사리와 두릅 등을 따 청주 육거리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을 한다.

6천600㎡의 논에 농사를 짓지만 아직도 소를 이용해 땅을 고르고 낫으로 수확하는 시골이다.

별명이 '꼴통'이라는 8년 된 암소는 김 할아버지의 친구이자 농사의 밑천이었다.

지난 27일 김이웅 할아버지와 김희순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다.

ⓒ김동수기자
"이놈한테 일 가르치는 데만 3년이 걸렸거든. 그래서 꼴통이라고 불러. 지금은 잘하긴 하는데 어릴 땐 어찌나 말을 안 듣던지."

일 가르치는 데 고생 좀 했다지만 김 할아버지는 최근 들려오는 구제역 소식에 자나 깨나 소가 아플까 걱정이었다.

외양간 주위를 돌아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도 눈에 띄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고라니나 너구리를 쫓아내는 임무를 맡은 '여수'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온 동네는 물론 뒷산까지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통에 김 할머니가 '여우'처럼 날쌔다고 붙여준 이름이다.

"1980년대만 해도 나룻배 타고 신탄진으로 가곤 했어. 아이들한테 돈이 필요하다고 연락 오면 가야했지. 30~40분 노 저으면 갈 수 있었거든."

댐이 건설되면서 산을 깎아 만든 도로가 생겼지만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아 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한 건 지난 1999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일한 교통수단은 나룻배와 하루 3번 다니는 행정선이었다.

전기 역시 지난 1980년대 초에 마을에 공급됐고 전화는 지난 1985년도에 마을에 유일하게 1대가 있었다.

지난 27일 김이웅 할아버지가 땔감용 나무를 지게에 지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10년 전 부터 위성TV를 보기 시작했지만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곳에선 무용지물이다.

"눈이 오기 시작하면 걸어서 30분 거리인 마을회관도 못 가. 5년 전부터 공영버스가 하루 6번 다니는데 눈 오면 버스도 안 와. 12월 초에는 열흘 넘게 안 들어 온 적도 있다니깐."

6㎞ 떨어진 소전진료소 역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갈 수가 없었다.

대부분 70~80대인 노인 16명이 사는 후곡리는 겨울이 되면 동네주민들끼리 왕래도 없어진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되는 만큼 노부부의 정도 깊어만 간다.

평소 '부부는 그림자와 같아야 한다'는 김 할아버지는 한시도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할머니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명절 때는 자식들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눈이 많아 오면 위험해서 아예 오지 말라고 하거든. 손주들도 보고 싶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김 할아버지는 다시 어깨에 지게를 메고 올 겨울 동안 쓸 땔감을 구하러 발길을 재촉했다.

/ 김동수기자 kimds03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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