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키워드로 풀어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관객상 수상

2015.01.04 18:51:35


독립다큐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열풍이 뜨겁다.

해가 바뀐 첫날, 누적관객 수 400만으로 밀어닥치며 여전히 그 기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수백 억 제작비에 톱스타 들이 열연해도 겨우 몇 십 만에 그치는 영화가 많은 가운데, 저예산 '님아'의 열기는 분명 우리 사회와 사람들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렸음이 분명하다.

2014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관객상 수상에 역대 다큐영화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역대 다양성 영화 최고의 흥행작으로 새로운 역사를 연일 갱신하고 있는 이 영화는 다가오는 1월 27일, 산타바바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초청작이기도 하다.

그 돌풍의 핵을 짚어본다.

△김유정 소설의 처녀 총각이 영화에서 노부부로 해로하다

춘천 가는 기차역에 김유정역이 있다. 한국 향토단편문학의 대가 김유정은 '동백꽃'과 '봄봄'을 통해 강원도 시골 처녀 총각의 순수한 사랑을 그려냈다.

그 처녀 총각이 다큐 영화에서 강원도 횡성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로 고스란히 해로했다. 소설 속에서 감자를 구워먹고 닭싸움을 시키며 산비탈의 노란 동백꽃 향기에 취해 절로 쓰러지던 젊은 연인들은, 이제 영화에서 곱고 맑게 늙은 구순의 노부부가 되어 있었다.

노부부는 아궁이 불에서 옥수수를 구워 먹고 강아지들을 어르며 노란 국화를 꽂아주면서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부부가 회고하는 젊은 시절에서 김유정 소설의 순박한 데릴사위 '나'와 천진한 '점순이'가 살아 움직였다.

강원도라는 공간, 혼약을 전제로 하고 일꾼으로 들어온 데릴사위, 어린 신부를 위한 배려 등 소설과 영화는 그렇게 청춘과 노년의 사랑으로 맞물려 있었다.


△감사와 배려의 토양에서 열매 맺는 깊은 사랑

부부는 서로 존대어를 쓰며 작은 일에도 그저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한밤중 할머니가 들어간 변소 앞에서 할아버지가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은 어린소꿉동무를 위하는 씩씩한 남자친구 같다.

부부가 누웠을 때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의 습관으로 할머니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뺨을 만져보곤 한다.

아홉 살 위인 조병만 할아버지가 데릴사위로 들어왔을 때 할머니는 열네 살이었다.

신부가 어려 다칠까봐 할아버지는 늘 조심스럽게 할머니 머리와 얼굴을 쓸어보기만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할머니가 먼저 다가가서야 부부의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 같겠지만 할아버지가 한창 혈기왕성한 20대 청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요즘 횡행하는 아동 성폭력이나 사회적 위력을 이용한 성추행 관련 뉴스를 볼 때, 조병만 할아버지의 사랑과 배려의 인품이 새삼 돋보인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시간이 발효된 삶의 마력

저무는 가을날 부부는 마당을 쓸다가 낙엽을 뿌리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개울에서 나물 씻는 할머니 근처에 조약돌을 던져 찬물을 튀긴다.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면 크게 감흥이 없었겠지만 98세 할아버지와 89세 할머니의 이 '천진한' 사랑가는 남다른 울림이 있다.

부부는 자식 열둘을 낳아 여섯을 잃었다.

그 참척의 절망을 추스르며 백 년에 가까운 삶을 이루는 동안 또 다른 아픔과 슬픔 또한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한 세기 삶의 하중을 관통해온 노인들의 '사소한 장난'은 강팍한 삶을 견디는 사람들의 숨을 트이게 하는 청량제였다.

이 영화에 열광하는 20대 젊은이들은, 현재의 사랑과 삶은 힘들지만 그 마지막 언저리가 저리도 가볍고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에 희망과 위안을 얻는다.

어둡고 긴 터널 끝에서 해사하게 비쳐오는 동그란 빛처럼, 노부부는 그렇게 우리의 먼 미래에 따뜻이 손잡고 서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연민과 교감

"할아버지가 먼저 가고, 그 다음 내가 가고, 그리고 네가 갈 줄 알았더니…". 키우던 강아지 '꼬마'의 주검을 묻으며 연신 섧게 우는 할머니의 말 속에는 인간과 동물의 층위와 차별이 없다.

생사의 순환 앞에 똑같이 목숨 가진 자로서의 존엄만 있을 뿐이다.

이와 비슷한 다큐영화 '워낭소리'에서는 시종일관 소만 챙기는 할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원망스런 말과 눈빛이 약간 불편한 사실로 남아 있다.

할아버지와 소의 교감은 깊었지만 정작 소외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님아'에는 부부간 사랑의 중심축에 동물도 함께 따뜻이 품고 있다.

자연과 동물과 사람 중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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